## '한국에 슈퍼301조 적용' 선봉 미국자동차공업협회 카드 회장 ##.

최근 미국이 한국에 자동차 시장 개방 압력을 가하기 위해 미 통상
법 슈퍼 301조를 발동키로 한 것과 관련, 미국자동차공업협회(AAMA)
앤드루 카드회장(50)이 배후 인물로 지목되고 있다.

실제로 그는 지난 7월 "한국이 95년 미국측과 합의한 '양해 각서'
를 이행치 않고 있다"며 미 무역대표부(USTR)에 슈퍼 301조 적용을 요
청, 이번 사태를 몰고온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또 그동안 기
회 있을 때마다 한국의 외국산 자동차 시장 점유율은 물론 자동차 세
제와 심지어 소비 절약 캠페인까지 집요하게 물고늘어지면서 무차별
공세를 퍼붓는 등 워싱턴에서 대한 통상 강경론을 조성하는 데 결정적
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지난 7월에 한국을 찾아와 과천 정부종합청사에서 통산부 관
료들과 회담하면서 고성이 오가는 험악한 분위기를 빚기도 했을 정도
로 한국 정부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국의 통상 관료들 사이에서는 카드 회장이 '고장난 녹음기'로 통한다
고 한다. 몇년째 한가지 메뉴만 고집하면서 이쪽의 설득과 해명을 전
혀 받아들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에 대해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일본에 대해서도 "95년의
합의사항을 제대로 이행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오히려 후퇴
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또 인도네시아 말레이시
아 중국 등의 국민차 계획이나 자동차 공업 육성 정책에 대해서도 끊
임없이 불평을 늘어놓고 있다.

주로 아시아 지역을 대상으로 한 카드 회장의 비난 공세가 그의 사
적인 감정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의 언행은
AAMA회장으로서 미국 자동차 산업의 이해를 충실히 대변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카드 회장은 매사추세츠주 홀브룩 출신으로 사우스 캐롤라이나 대
학에서 엔지니어링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매사추세츠주로 돌아와
디자인 엔지니어로 직장생활을 하다 75년 주의회에 진출, 8년간 하원
의원으로 재직했으며 82년엔 전국공화당의원협회로부터 '올해의 의원'
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카드 회장은 주지사 출마를 위해 공화당 후보 지명전에 나섰다가
탈락한 뒤 83년 당시 레이건 대통령의 보좌관으로 임명되면서 처음 워
싱턴 정가에 진출했다. 그는 주로 주지사들을 상대로 연방정부와 주정
부간업무 협조 및 조정 등 지방 행정과 관련된 업무를 수행했으며, 부
시 행정부에서는 비서실 차장으로 백악관의 일상 업무를 관할했다.

● "상원의원 되는 것만큼이나 흥분되는 일".

'권부'에 오래 몸담았으면서도 중앙정치 무대의 주역으로 활약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이 일반에 알려질 기회는 별로 없었다.

비서실 차장 재직시 경제 외교 및 국내 정책 등 광범위한 분야에 관여
하면서 전임자들에 비해 훨씬 비중 있는 역할을 하기는 했지만 스포트
라이트를 받은 적은 없다.

이 때문에 부시 대통령이 92년 2월 그를 교통부 장관으로 지명했을
때 워싱턴 정가의 첫 반응은 "카드가 누구냐"는 것이었다. 각료에 대
한 인준을 담당하고 있는 상원에서도 그를 잘 알고 있는 의원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불과 11개월 정도의 짧은 장관 재직 기간 동안 그는 상당히
많은 일을 했다. 전국적인 철도 파업 사태를 해결했고 제1차 국제영공
개방 협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으며 각종 수송기관을 통합, 이용할
수 있는 법안을 마련했다. 또 92년 4월 허리케인 '앤드루'가 플로리다
와 루이지애나주를 강타하면서 막대한 피해를 내자 연방 정부 차원의
재해구조 업무를 총괄하는 책임을 맡기도 했다.

카드 회장이 부시 행정부에서 맡은 마지막 임무는 클린턴 행정부로
정권을 이양하는 일이었다. 83년 백악관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이후
민주당에 정권을 넘겨주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리를 지킨 것이다. 보스
에 대한 충성심과 함께 거의 외곬으로 할 정도로 자신의 직무에 끝까
지 최선을 다하는 그의 특성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카드 회장은 93년 7월까지 정권 이양팀에서 일하다 물러난 뒤 에드
워드 케네디를 상대로 매사추세츠 상원 의원직에 도전하기 위해 준비
하던중 '빅3'의 제안을 받아들여 AAMA 회장에 취임했다. 그는 취임식
에서 "내가 바라는 것은 미국을 위해 뭔가 다른 일을 하는 것이며, 이
제 나는 미국을 대표하는 산업을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게
됐다"며 "이는 상원 의원이 되는 것만큼이나 흥분되는 기회"라고 말했
다.

카드의 최근 언동을 보면 아직도 그 흥분된 감정을 그대로 간직하
고 있는 듯하다. 그에 대해 뭐라고 평가하든 호흡이 긴 인물인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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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3'보다 목청 큰 이익 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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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의 한국 대사관에 근무한 적이 있는 한 공무원은 "한·미간
자동차 통상현안에서는 미국 자동차 빅3보다도, AAMA(American Auto-
mobile Manufacturers Association· 미국자동차공업협회)가 항상 더
골칫거리"라고 말한 적이 있다. 실제로 "미국의 빅3는 업체별로 한국
시장에대해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반면, AAMA는 협회의 존
립 목적을 위해 오히려 빅3보다도 목소리를 더 높여 통상압력을 가해
온다"는 것.

이번에 미국이 한국자동차시장에 대해 슈퍼 301조를 발동, 우선협
상대상국관행(PFCP)으로 지정하게 된 진원지도 바로 AAMA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AAMA는 미국 자동차업계의 국내외 시장 진출과 관련, 해결
사 노릇을 자청한다. AAMA 회원은 제너럴 모터스,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의 3대 자동차메이커. AAMA와 카드 회장의 영향력이나 파워는
그 배후에 '빅3'가 있기 때문이다. AAMA와 카드 회장은 '빅3'의 합법
적인 로비스트이자 '나팔수'라는 것이다.

업계 목소리를 대변하는 이익 집단이지만 매달 또는 분기별로 '판
매 및 생산, 수출 관련 통계 보고서'도 작성한다. '자동차 통계연감'
'세계 자동차지표' 등의 권위 있는 통계 보고서도 매년 펴낸다.

실제로 AAMA는 그동안 "한국의 자동차 시장에서 수입차 점유율이
1%미만"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한국에 진출한 빅3의 판매량 등
을 집계해서 작성한 수치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AAMA측 자료가
틀렸다고 반박하지만 국내 수입차 통계가 실제 판매량과는 다소 거리
가 있는 통관 기준으로 작성되고 있어 AAMA의 주장을 완전히 뒤엎지
는 못하고 있다.

워싱턴에 본부를 둔 AAMA는 스스로 "1백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미
국내 가장 전통있는 자동차 관련 단체"라고 자부한다.

AAMA의 뿌리는 1900년에 설립된 NAAM(국가자동차공업협회)로 거슬
러 올라간다. NAAM은 1934년에 AMA(자동차제조업협회)로, 1971년에는
MVMA(자동차제조업협회)로 이름을 바꿨다가 지난 92년 11월에 현재의
AAMA란 이름으로 바꾸고, 본부도 디트로이트에서 워싱턴으로 옮겨왔
다. 미국자동차산업의 중심지에 있는 디트로이트사무소 등 미국 전역
에 9개의 지역 사무소를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