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생, 올 겨울쯤 애를 가질까 하는데, 좀 양보해 줄 수 있겠어?"
"그러세요, 전 내년 봄으로 미룰까 해요.".
서울 고려대 안암병원 수술실 기혼 간호사들은 수술 스케줄 외에 '임
신 스케줄'이 따로 있다. 업무 특성상 한꺼번에 임신하면 다른 동료들의
부담이 크게 늘어나기 때문에 자율적으로 순서를 정해 시기를 조절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A간호사는 내년봄, B간호사는 5∼7월…'이라는
식이다.
이 병원 수술실에 근무하는 간호사는 모두 32명. 이중 절반 가량인
15명이 기혼자다. 수술실 간호사들이 '임신 스케줄'을 정게 된 것은 2년
전. 당시 수술실 간호사 4명이 동시에 임신하는 '사건'이 발생한 게 계
기였다. 이들이 출산을 전후해 2개월간 휴가를 가는 바람에 남은 간호사
들은 거의 쉴틈없이 강행군을 해야 했다. 수술실은 야간 교대근무를 하
는 등 특수분야여서 대체인력이 와도 어려운 수술은 맡기기 힘들기 때문
이다. 한 간호사는 "당시 임신한 동료들은 '눈치도 없이 한꺼번에 일을
벌였다'며 부러움섞인 핀잔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 이후 수간호사인 이영화(44·여)씨가 나서 '교통정리'를 했다. 이
간호사는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계획'이 있는 사람들
은 미리 협의해 시기를 조정하고 순서를 잘 지키도록 당부했다"고 말했
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수술실에서는 여러 명의 출산휴가가 겹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스케줄에 따라 올해는 6명이 출산 계획을 세웠다.
3명은 이미 아이를 낳았고 현재 1명이 출산휴가를 가 있다. 이 간호사는
"우리뿐 아니라 전문직 여성이 많이 일하는 직장에서도 사정은 비슷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장일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