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물꼬 타고 물줄기가 흘러들었다. 꽉 짜인 수업과 방과후 학
원공부, 밤샘숙제들에 가로막혀 답답하던 물방울들 숨통이 트였다. 금
세 스물다섯평 공부방은 아이들 재잘대는 소리로 가득차버렸다. 서울
마포구 동교동 네거리 경의선 철길옆, 삭막한 도시 건물 지하에 학교
가 살아 숨쉰다.
옥영경(31·여)씨는 이 공부방 '자유학교를 준비하는 모임 물꼬'의
'터장'이다. 2004년 충북 영동에 '자유학교'를 세우겠다는 젊은이다.
89년말 글쓰기 교사모임 '열린글 나눔삶터'를 거쳐 94년 8월, '앞으
로 10년뒤'를 목표로 '2004년 자유학교'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유치원
생부터 고교생까지 정원 1백명쯤 될 '공동체 학교'다. 학교를 중심으
로 50∼60가구가 함께 농사짓고 사는 공동체를 꿈꾼다.
지금 초등학생을 중심으로 운영하는 '글터' '그림터' '연극터'수업
과 캠프형식으로 열리는 계절학교는 모두 자유학교를 위한 훈련이다.
그동안 5백명 넘는 아이들이 물꼬 공부방을 통해 인연을 맺었고, 수십
명씩 참가하는 계절자유학교도 13번 치렀다. 어려운 점도 많았지만,
아이들 덕분에 잊을 수 있었다. "어른들이 끊임없이 상처를 주는 동안,
아이들은 지속적으로 위로를 해줬습니다." 지금 남편도 계절학교 교사
로 만나, 95년 8월 계절학교에서 결혼했다.
막연히 '10년뒤'는 아니다. "2003년엔 대학입학 정원이 수험생보다
많아진다면서요. 그때는 교육환경도, 교육에 대한 인식도 달라질 겁니
다.".
옥씨는 그 전에 통일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교육관련 법이나
행정제도도 잇따라 바뀔 거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기존 틀을 깨는 모
험이 불안스럽지 않다. 학교 터는 상촌초등학교 대해분교. 충북 경북
전북, 3도가 만나는 삼도봉 밑 물한계곡 지나 산과 들과 물이 만나는
곳이다.
옥씨는 스스로를 "고교 졸업때까지는 전형적인 모범생이었다"고 말
했다. 그러나 행복하지는 않았다 한다. "시골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들
어가 차석 졸업했어요. 성적도 항상 좋았고, 외부 웅변대회, 글짓기대
회에서 매번 상을 탔지요." 고교졸업 후엔 대학을 3곳이나 옮겨 다녔
지만, 학생운동에 몰두해 졸업을 못했다고 한다. 방송 구성작가, 논술
교재출판일도 했고, 연극도 했다. 방송대 교육과 2학년인 지금은 자유
학교가 삶의 전부다.
2004년을 꿈꾸면서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도 많이 모였다. 전임교
사격인 '두레일꾼'이 옥씨를 포함해 7명. 시간을 쪼개 돕는 '품앗이일
꾼'은 1백여명, 경제적으로 돕는 후원자도 1백명쯤 된다. "꼭 사대나
교대출신일 필요는 없어요. 교육운동에 대한 전망이 같은 사람들이 함
께 합니다." 그러나 교사들은 자유학교를 세울 때까지 교육학을 따로
공부할 계획이다. 그래야 학교 인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욕심
같아서는 학생수와 교사수가 똑같은 학교를 만들고 싶단다.
새로 세울 학교는 물꼬 공부방처럼 놀며 어울리며 공부하는 곳이다.
일반교과 30%, 프로젝트 수업 30%, '일과 예술과 명상을 통한 교육'이
30%고, 나머지 10%는 자유시간으로 줄 생각이다. 모두 학교에서 기숙
생활을 시키겠단다. "대학까지 교육받고 빨래나 바느질도 제대로 못하
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교육은 철저히 삶에 기초해야 합니다.".
꿈은 크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대해분교를 사들이고 정리하는 데만
2억원쯤 들 테지만, 그간 모은 돈은 2천만원뿐이다. 그래도 그는 밝다.
"중학생이던 아이들이 '품앗이일꾼'으로 돌아오고, 제가 가르친 초등
학생들이 대학에서 '자유학교연구모임'을 만들었대요. 이만하면 절반
은 성공한 셈 아닌가요.".
옥씨 책상엔 미국 작가 헨리 소로가 물질문명과 단절한 채 자급자
족하면서 쓴 책 '월든'이 놓여있다. 2004년 영동에 세워질 자유학교는
소로가 2년여 살았던 미국 매사추세츠 월든 호숫가와 비슷한 풍경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한현우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