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토 오브리옹의 풍부하고 깊은 스타일, 그토록 조화로운 떫은 맛
에 견줄 만한 와인은 거의 없다. 5백년 역사를 지닌 샤토의 이 프리미어
크루(첫수확)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흥미롭게도 이
탐나는 포도농장은 미국사람 소유다.
1935년 미국 은행가 클래런스 딜런이 샤토 오브리옹 포도밭 1백11
에이커를 사들였다. 그렇지만 오브리옹과 미국인의 인연은 1787년으로
거슬러 간다. 미국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이 파리 공사 시절 이곳
을 방문해서 이렇게 말했었다.
"보르도 레드와인중 최고는 4가지다. 샤토 마고, 샤토 라투르, 샤
토오브리옹, 샤토 라피트"라고.
1953년, 클래런스 딜런의 아들 더글러스가 파리주재 미국대사가 됐
다. 그는 훗날 케네디대통령 밑에서 재무장관을 지냈다. 나는 그의
딸 존과 50년대 후반 샤토 오브리옹에서 만나 우정을 맺었다. 당시 샤
토 오브리옹 포도밭과 와인창고 소유자는 보르도의 전설적 와인메이커 조
르주 델마였다.
그는 새로운 와인생산 기술을 꾸준히 도입했다. 67년 존은 룩셈부
르크 찰스왕자와 결혼했다. 그러나 그녀는 독일의 프랑스 점령때 크게
파괴된 포도주창고를 새로 세우고 샤토를 보수하는 것을 계속 지켜봤다.
샤토 내부는 예전 아름다움을 되찾았고, 다시 딜런가 저택이 됐다.
77년 찰스왕자가 죽자, 존 공주는 뒤크 드 무시와 결혼했다. 오브리옹
와인의 열성적 수집가 마르샬 드 무시의 후손이었다. 내가 지난달 샤토
오브리옹을 찾았을 때 존은 파리 한 병원에서 말기 암과 투병하고 있었다.
지금 샤토 오브리옹은 아버지 조르주 델마의 실험정신과 개척정신
을 이어받은 장 델마가 경영하고 있다. 그는 엄격한 포도 선정 시스템을
구축하고, 보르도대 농경학연구소와 손잡고 혁명적인 포도품종 배양 프로
그램을 시작했다.
"2000년 샤토 오브리옹에는 엄선된 품종의 포도만 자랄 것입니다.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우리는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조만
간 생산시스템과 와인 맛이 훨씬 좋아지리라 확신합니다.".
장델마의 말이다. <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