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옥대환기자】'경고 4명의 90분 사투.' 28일의 한 일전은 양
국 선수들의 기세가 정면으로 격돌한 박진감 넘치는 한판이었다. 한국
의 이민성 유상철, 일본의 로페스 오무라가 옐로카드를 받았고, 거친
태클로 도쿄국립경기장의 잔디가 개장 이래 최악의 수난을 당했다.

이처럼 격앙된 분위기를 연출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한-일 두 나
라 모두 1대1 대인방어를 구사했기 때문. 한국은 일본의 공세를 완화
시키기 위해 투톱 미우라와 로페스를 집중 마크했다. 주장이자 노련한
최영일이 미우라를 맡고, 브라질전서 호나우도를 꽁꽁 묶었던 이민성
이 찰거머리처럼 로페스를 따라다녔다. 일본 공격의 젖줄인 미드필더
나카타는 최근 한국 대표팀에 가세한 수비수 장형석의 차지. 평소 지
역방어를 펼치던 일본도 오무라에게 최용수의 봉쇄를 맡기는 등 압박
작전을 구사했다. 이렇다 보니 자연스레 몸과 몸이 부딪치고, 반칙이
속출할 수밖에 없었다. 선수들은 둘씩 붙어 다니며 주심의 눈을 피해
서로 옆구리를 쥐어박았고, 기회만 있으면 노골적인 반칙으로 상대를
쓰러뜨렸다.

이 1대1 대결에서 임무를 가장 성공적으로 수행한 선수는 최영일.
일본이 자랑하는 스트라이커 미우라는 최의 기세에 눌려 90분 내내 이
렇다할 장면을 연출하지 못했다. 대신 미우라는 경기 중간중간 땅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고, 그라운드를 뒹굴며 고통을 호
소했다. 둘은 급기야 주먹다짐 일보직전까지 갔고, 사이드 라인의 선
심이 깃발을 든 채 화해를 종용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비슷한 처지에 놓이기는 한국의 최용수도 마찬가지. 오무라 역시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최용수를 괴롭혔다. 또다른 한짝이었던 이민성
과 로페스도 전반 25분과 31분 각각 경고를 주고받았다. 로페스는 심판
의 눈을 피해 '기술적으로' 이민성을 쥐어박았고, 한국의 수비는 GK 김
병지까지 가세해 로페스를 쩔뚝거리게 만들었다. 후반 10분 유상철의
옐로카드는 주심이 퇴장을 명했어도 할 말이 없었던 상황. 바로 옆에서
동료가 일본 선수의 거친 플레이에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자 곧바로 달
려가 상대의 가슴팍을 떠밀었던것.

이날 주심이 꺼내 든 옐로카드는 이같은 일촉즉발의 위기가 본격적
인 '육탄전'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 그럼에도 불구하
고 선수들은 관중과 심판의 눈이 다른 쪽으로 쏠리는 틈을 이용, 파울
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잡아먹을 듯 으르렁거렸다. 이날 경기를 참관했
던 80년대 한국의 대표적 수비수 조영증씨는 "수비수의 입장에서는 상
대를 놓치는 것은 골과 직결되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라도 위압감을 줄
수밖에 없다"며 "원정 경기였음에도 한국 선수들은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