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야 유림들 왕에게 당당한 직언...유럽선 편지문집 발간 많아 ##.

서간은 문자생활을 시작한 인류의 오랜 유산이자 특히 한국의 자랑스
런 문화유산이다. 서간은 사람과 사람사이를 이어주는 다정한 커뮤니케
이션의 수단이었고, 먼곳에 떨어져 사는 사람들을 서로 연결해 주는 가
장 오래된 텔레커뮤니케이션(원격통신)의 수단이기도 했다.

서간은 또한 인류 최초의 문학 장르였다고도 볼 수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서간은 사사로운 문안, 하장 위장 등 평상적인 기별의 구실만
이 아니라 철학적, 학문적, 정치적 담론을 펼친 포럼의 구실도 해왔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서간 형식이 수백년 동안이나 나라를 걱정하는
선비들이 조정을 향하여 토로한 열렬한 공론의 언로로도 구실했다.

우리나라 옛 선비들의 문집류를 보면 그 역시 상당부분이 서간문장임
을 알 수 있다. 문집의 목차에 서독류로 분류해서 묶은 글들이 평상생활
의 실용서간이라면, 주소류로 편집된 글들은 정사에 관한 의견을 조정에
적어 올린 상소문들이다. 주소류의 서간은 그 격식에 따라 소, 차, 계,
의 등으로 세분되어 문집에 수록되기도 한다.

우국의 사림들이 나라를 바로 잡기 위하여 주상에게 바른 말을 직언
하고 때로는 군왕과 그의 조정을 질책하기조차 했던 기개와 소신의 대문
장으로 된 수많은 상소문들은 우리나라 문학사, 언론사, 정치사의 아직
도 미개간의 보고라 나는 믿고 있다.

언필칭 문민민주주의라 떠벌리고 있는 세상에서, 제도적 언론기관의
직업적인 신문인이나 방송인조차 국민이 선출한 기한부 대통령의 비정에
대해서말을 조심하고 있는 것이 현대 한국의 언론자유의 실상이다. 그에
비긴다면 왕조시대에 사헌부, 사간원의 언관들이, 그리고 그보다도 벼슬
을 하지 않고 산림에 묻혀사는 재야의 유림들이 정사의 시무에 관하여
당당히 소신을 밝혀 주상에게 간쟁을 서슴지 않던 비판정신과 그를 표출
한 용기는 오늘의 전문직 언론인들이 배워 마땅한 우리문화의 뿌듯한 유
산이 아닌가 생각된다.

서양의 의회(parliament)는 어원적으로 말(parler)을 지껄이는 전당,
'말'로서 정사를 논하는 포럼이다. 그것은 그렇기에 원래 시끄러운 곳이
다. 그에 비해서 우리나라 상소제도는 '글'로서 정사를 논의했던 포럼이
다. 그곳은 그렇기에 조용한, 소리없는 한국의 '의회'제도였다. 비록 소
리는 없으나 그 보이지않는 의사당에 빗발친 서간형식의 말은 뜨겁게 열
이 올라있었고 그 비판적 언론의 질과 양에 있어서 동시대의 서양 어느
나라의회의 그것에 비해도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 이러한 얘기를 나는
독일 마인츠 대학에서 비교언어학을 가르치는 친구 하인츠 괴링교수에
게 했더니 그는 그의 책에서 상소제도에 대하여 '글의 의사당'이란 뜻의
'Skribement'라는 조어를 만들어준 일이 있었다.

서간을 띄우고 받고 그리고 서간을 간직한다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
고 문명국의 관행이다. 파리의 센강 왼쪽 기슭에는 미술작품을 사고파는
수많은 화랑과 함께 나폴레옹이나 바스마르크, 발자크나 조르주 상드,
모차르트나 베를리오즈의 편지 등을 사고 파는 전문가게들이 있다. 서양
의 작가나 학자의 전집에는 보통 서간집으로 한 두권을 뒷부분에 엮는
것이 관례이다.

그리고 그러한 서간은 작가나 학자의 인물 연구에 매우 귀중한 열쇠
가 되곤한다. 이 모든 점에 있어서 우리나라는 서양에 뒤지지 않는 문자
문화의 선진국으로서 수많은 문화유산을 지니고 있다.

서간문화의 가장 오랜 문화유산으로는 신라시대의 최치원이 당나라에
서 쓴 '답절서주사공서' 등 32편의 서간이 있고 그뒤 고려시대, 조선시
대의 서간들은 수많은 문집속에 기록보존되고 있다.

서간을 잘 간직했기 때문에 그러한 문집의 편찬이 가능했고, 서간을
잘 간직했기 때문에 퇴계나 율곡, 추사나, 표암등의 수많은 유묵들을 우
리가 오늘날 전해받아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뿐만 아니다. 근래
에 와서 세계적인 수집가들의 주목을 받게된 기품높은 조선조 목기 가운
데서도 유별나게 장식적인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고비'는 바로 서간을
보관하기 위한 것이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이 있다. 평생동안 우리나라의 제지기술 발전을 위
해 몸바쳐온 '종이 박사' 조형균씨에 의하면 미국의 제지사가다드 헌터
(Dard Hunter)는 전 세계의 제지관계 사적을 답사하여 수집한 자료를 모
아 설립한 그의 박물관(Dard Hunter Paper Museum)의 안내 책자에 다음
과 같이 밝히고 있다는 것이다. "한민족은 아마도 원료에 물을 들여 색
지를 만든 최초의 기술자들이며 또한 역사상 처음으로 봉투를 만들어 썼
다. 이 두가지 중요한 발명에서 한민족은 중국인의 발명적 천재성을 앞
지른 것으로 안다"고--. 그리고 보면 옛 편지의 원본들을 모아 책으로
묶어낸 '간독'들을 보면 편지와 함께 수신인 발신인의 성명을 명기한 봉
투도 함께 수록한 것이 예사이다.

서간문화의 이러한 선진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우리는 어느사이
에 편지를 쓰지도 않고 간직하지도 않은 한국인이 되고 만 것만 같다.말
인즉 일제식민지 치하를 살아오고 군부독재의 정보정치 아래서 살아오느
라기록을 남기면 위험 부담이 있었기 때문에 편지를 소멸시켜 버렸다는
것이다. 변명이 없는 것이 아니고 납득할 만한 설명이 아닌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변명과 설명이 전혀 힘을 잃어버린 경우를 경험한 일
이 있다. 얼마전 텔레비전의 외국 위성방송을 통해서 나치스 시대에 아
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젊은 폴란드인을 대신하여 스스로 죽음을 택한 가
톨릭의 성자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았다. 그 신
부가 생전에 죽음의 수용소에서 외부로 적어보낸 편지가 1천여통이고,그
가운데 6백여통은 지금 누군가가 보존하고 있다는 설명이 있었다. 일제
시대의 형사나 우리나라 정보부의 감시가 나치스의 '게슈타포'(비밀경찰)
보다도 더욱 삼엄하고 무서웠던 것일까.

편지를 간직하지 않는다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지만 전화에 밀려 편지
를 쓰지도 않게 되었다는 것은 더욱 쓸쓸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유네스
코의 맥브라이드 보고서를 보면 항공기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우편배달의
속도는 늦어졌다고 적고 있다. 그보다도 더욱 안타깝고 아이러니컬한 것
은 우편량이 늘어날수록 편지수는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날이면 날
마다 집으로 사무실로 배달되는 우편물은 많으나 그 대부분이 안내물,초
대장, 상품광고, 기업의 사보, 홍보물 따위로 손에 들자마자 곧 쓰레기
통에 던져버리는 인쇄물들이 대부분이다.

휴지통이 종점이 되는 그러한 익명성의 우편물 더미에서 이따금 발신
인도내 얼굴을 알고 나도 발신인의 얼굴을 아는 육필로 적은 편지를 발
견하면 어찌나 반가운지…. 그러한 서간이 지금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전화가 물론 간편하기는 하다. 그러나 맥브라이드 보고서도 지적하
고있는 것처럼 "편지 쓰는 습관이 줄면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을 글로 표
현하는 능력이 감소되고 그것이 또한 문화적인 손실"이 되고 있는 것이
다.안타까운 일이다. 특히 한국의 자랑스런 서간의 문화유산을 볼 적마
다 그 안타까운 생각은 더욱 깊어지기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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