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프로그램 제목, 이른바 타이틀 글씨체는 매우 유려하다. KBS
1TV 사극 '용의 눈물' 제목만 해도 그렇다. 누군가 외부 유명 서예가
가 써준 것같지만 그렇지않다.

방송사엔 프로그램 제목 글씨만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쓰는 사람이
있다. KBS 아트비전 그래픽부 이일구(42)차장이 그런 사람이다. 80년
입사해, 지금까지 줄잡아 1천개에 이르는 제목을 쓰거나 그려냈다.
동국대에서 동양미술을 전공한 덕에 좀 더 체계적으로 일할 수 있었
다고 한다. 요즘 방영되는 '용의 눈물' '정 때문에' 'TV 조선왕조실
록' '질주' '초원의 빛' '이소라의 프로포즈'가 다 그의 작품이다.
'용의눈물'의 경우 5백번 넘게 써서 추려낸 작품이다. 그가 써 낸 작
품은 스캐닝으로 컴퓨터에 들어가 색깔 작업을 거친 뒤 전파를 탄다.

그는 KBS 직원이면서 서예가이기도 하다. 83년 이후 대한민국서예
대전에 7차례나 입선했다. 90년엔 문인화로 특선하기도 했다. 이젠
그룹전과 초대전도 갖고 있다. KBS 내에서는 그를 '화백'이라 부른다.

타이틀은 프로그램 얼굴이라 시청자 관심도 크다. 지난해 말 KBS
엔 "'용의 눈물'의 용자에 획이 두개 빠졌다. 글자 제대로 쓰라"는
시청자 항의가 많이 들어왔다. 그는 즉각 서예 고전들을 인용해 "예
부터 그렇게도 써왔다"고 해명해 항의들을 모두 잠재웠다고 한다.

그는 간간이 TV에도 출연한다. 얼굴이 아니라 팔과 손이다. KBS 사
극중 한문을 쓰는 장면에 나오는 손은 대부분 그의 것이다. '용의 눈
물'의 살생부, 상소문 같은 것도 모두 그가 썼다. 그는 "'용의 눈물'
상소문들은 아무글자나 마구 쓴 게 아니라, 실록에 나온 내용 그대로
옮겨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요즘 새 드라마 '아씨' 타이틀을
만드느라 바쁘다. < 박중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