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절정기에 미.소 스파이전을 진두 지휘했던 두적수가 분단 베를
린을 중심으로 치열하게 전개됐던 첩보전 비화를 밝힌 책을 공동집필했
다.

화제의 주인공은 지난 50년대와 60년대 KGB `독일 첩보과' 과장이
었던 세르게이A.콘드라쇼프(73)와 CIA 베를린 지국장이었던 데이빗 E.머
피(75).

두 사람은 제3의 공동저자인 뉴욕태생의 조지 베일리 전 라디오 리
버티 방송기자와 함께 쓴 책 의 출판을계기로 베를린을 방문, 슈프링거 기자클럽에서 재회했으며 4
0년전 소련군 교신 내용을 도청하기 위해 미.영 양국이 베를린 지하에 건
설한 "스파이 터널"을 함께 둘러보았다.

50년대 중반 미 CIA의 최대 야심작이었던 이 터널은 영국의 이중간
첩조지 블레이크가 KGB측에 그 전모를 제보함으로써 목적을 달성하지 못
했다.

서베를린에서 시작, 동베를린의 소련 관할구역내 트레프토브까지
뚫렸던 길이 약 5백m의 이 터널은 최근 순전히 우연으로 발견됐다.

콘드라쇼프는 슈프링거 기자클럽에서 "냉전이란 벌어지기는 매우
쉽지만 종결되기는 매우 어렵다"면서 "냉전의 경험을 망각한다면 비극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동서첩보전의 실적을 말해달라는 요청에 양측은 자국정부에 상
대방의 "계획과 의도"를 항시 보고함으로써 "유럽을 3차대전 위협으로부
터 보호하는데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빌면 70년대 독일에 대한 새로운 정책이 필요하다는 점
과 구소련의 인권 및 기본자유가 신장돼야 한다는 점을 최초로 인식한 것
은 유리 안드로포프 전KGB의장이었다.

이에 대해 머피는 안드로포프가 러시아의 경제난과 서방에 대한 경
제적 낙후를 인식한 것은 사실이나 그는 "원을 사각형으로 만들려는" 과
오를 범했다고 주장했다.

안드로포프는 개혁을 원했지만 동시에 국정 전반에 대한 공산당의
장악이라는 불가능한 목적을 계속 추구했다고 머피는 말했다.

머피는 또 공산체제의 붕괴가 곧 자본주의의 승리는 아니라면서 이
것은 "자유의사로 선택하는 방향대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남녀 개개인의
승리"라고 강조했다.

그는 창설 50주년을 맞은 CIA의 사기는 여전히 살아 있다면서 CIA
와 여타 정보기관들은 오늘날의 악과 테러에 대처하는 중요한 기능을 맡
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예일대 출판부에서 간행된 이 책은 2차대전말부터 1961년의
베를린장벽 구축시까지 세계최대 냉전현장인 베를린을 중심으로 펼쳐진
첩보전 내막을 공개하고 있다.

이 책에는 "스파이 터널"건 외에 서방 첩보원들이 런던의 영화관,
이층버스 등을 접선장소로 이용했고 KGB는 미.영 터널계획을 중단시키기
에는 블레이크의 제보내용이 너무 민감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사실,
스파이와 접선한다는 것이 술취한 외교관과 만나게 된 에피소드, 적의 정
보를 빼내기 위한 필사의 노력, 2차대전의 연합국들이 상호불신관계로 급
속히 분열된 점, 베를린 시가지에서의 치열한 첩보전 등이 소개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