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아르투르 로진스키(1892∼1958) 연주집 13종이 '웨스트민스터'
레이블 CD로 나왔다. 로진스키는 금세기 전반 '오케스트라 설계사'로 이
름을 떨친 명장이다. 폴란드 태생으로 필라델피아관현악단 부지휘자를
시작으로, LA필하모닉 클리블랜드오케스트라 뉴욕필하모닉 시카고심포니
상임지휘자를 지냈다. 토스카니니악단으로 통한 NBC관현악단도 로진스키
가 토스카니니를 도와 만들었다.
'웨스트민스터'의 로진스키 시리즈는 LP명연주를 일본에서 리마스터
한 것이다. 그가 미국악단서 은퇴, 프리랜서로 일하던 54∼62년 영국 로
열필하모닉 등을 지휘한 것으로 ▲쇼스타코비치 '교향곡5번' ▲베토벤
교향곡5번, 슈베르트 교향곡 '미완성'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5-6번
▲프랑크 교향곡 ▲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 ▲드보르자크 교향곡
'신세계' ▲바그너관현악곡집 등이다.
로진스키는 악단건축가였지만, 음의 설계사는 아니었다. 그는 악곡의
구조 보다는 드라마성에 집착했다. 아폴론적이기보다 디오니소스적이다.
이런 개성을 보여주는 연주가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MVCW 18008),
베토벤 '운명(슈베르트 '미완성'과 조합)'(MVCW 18010)이다. 쇼스타코비
치와 베토벤의 5번교향곡은 여러모로 닮았다. 주제가 '인간'이라는 점이
그렇고, 고뇌-극복-환희로 주제를 풀어가는 방식도 동일하다.
쇼스타코비치 '5번'의 전개를 '과거에 대한 회상'(1악장) '돌아오지
않는 어린시절의 추억'(2악장) '눈물'(3악장) '환희의 송가'(4악장)로
정리해볼 수 있다. 특히 3악장(라르고)의 눈물겹도록 투명한 서정, 용암
처럼 폭발적으로 분출하는 종악장의 대비는 극적이다. 로진스키의 쇼스
타코비치 독법은 직관적이다. 저음현과 고음현이 서로 카논으로 모방하
는 비극적 주제로 시작하는 1악장 도입부부터 투박하다. 모노녹음에 선
명치못한 음질탓도 있지만, 연주는 거칠거칠하다. 로진스키는 당당한 속
도감과 추진력으로 오케스트라를 드라이브한다. 마치 겉치장보다 직관으
로 브루크너 속살을 헤집은 크나퍼츠부쉬를 연상시킨다. 쇼스타코비치
'5번'을 이렇게 접근한 스테레오 수작녹음으로 콘드라신/모스크바필하모
닉(오이로디스크)을 빠뜨릴 수 없다.
로진스키는 쇼스타코비치 '5번'을 38년 미국초연하고, 42년 미국최초
로 녹음했다. 파트너는 '클리블랜드'다.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 '므첸스
크의 맥베드부인'을 미국초연한 지휘자도 로진스키다. 비록 쇼스타코비
치는 로진스키 이후 '5번'을 뉴욕필하모닉과 두번 녹음한 번스타인을 신
뢰했다지만, 로진스키의 '5번'은 쇼스타코비치 당대에 쇼스타코비치 전
도사로 이름을 날린 로진스키의 음악세계를 들여다보는 값진 앨범이다.
프레이즈 하나 하나 쫀쫀하게 치장하기보다 악곡의 본래적 드라마를
파고드는 로진스키방식은 교향곡 '운명-미완성'(mvcw18010)서도 뚜렷하
다. 슈베르트의 리리시즘, 베토벤의 '천상천하 유아독존'에 직설적으로
다가선 호쾌한 연주다. 이 녹음만큼은 용케 스테레오다. ☎02(208)5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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