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들은 드라마 '파랑새는 있다'에서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
는 인물로 '사기꾼' 백 관장을 꼽을 것이다. 능글능글한 언변과 포커 페
이스로 사람을 안심시켜 놓고 사기극을 벌인 뒤 갑자기 사라지는 사람….

그 백 관장 역을 맡은 중견 탤런트 백윤식(50).

중앙대 연극영화과 출신인 그는 70년 KBS에서 연기를 시작했다. 이데
올로기로 괴로워하는 좌익 지식인, 세상 고민 다 짊어진 예술인 역할 등
을 주로 맡아오던 그였다. 하지만 '서울의 달'에서는 코믹 연기로 이미
지 변신을 시도했고 이번 '파랑새는 있다'에서도 변신중이다.

"사기 연기는 어렵습니다. 언제나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야 하니까
요. 하지만 어차피 연기 자체가 사기 아니겠습니까.".

백씨는 사기꾼 역할을 제의받고 무척 망설여졌다고 한다. 사기 행각
을 벌이는 사기꾼이라는 설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유형
의 연기를 해본 적도 없었고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 군상 속에서 한 부
분"이라는 작가와 PD의 설득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작가와 연출자가
백씨를 고른 이유는 사람들이 보기에 전혀 사기를 칠 것 같지 않은 사람
이 사기를 치면 효과가 더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백 관장은 존재 자체가 사기였다. 산 속 암자 생활에서
홀로 수련한 끝에 얻은 전혀 공인받지 못한 사이비 무술. 하지만 백씨는
애써 의미를 찾았다. 백씨는 "외국 영화를 보면 사기꾼이 멋있게 그려
진다. '스팅'을 봐라. 사기를 당한 사람이 찍소리 못하고 KO당하지 않느
냐"는 식으로 자기 최면을 걸었다.

"주위에서는 이 친구에게 속고 나서는 '나타나면 때려 죽이겠다'고
말하지요. 하지만 실제 나타나면 욕을 못합니다. 만나면 화를 풀고 다시
믿었다가 그럴듯한 얘기에 또 속습니다. 사기성 있는 사람이 대개 그렇
듯이 친구는 머리가 좋습니다. 특히 남을 속이는 쪽으로 머리가 비상하
게 발달돼 있죠.".

● 법과 사냥감에 대해 철저하게 분석해야.

연기를 해보니 사기라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
았다. 전문 지식을 얻기 위해 철두철미하게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우선
법규를 잘 알아야 하고 사냥감을 포착하면 대상에 대한 분석도 있어야
한다. 백 관장은 극중에서 도서관을 들락날락하면서 세법과 토지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헤친다. 그리고 영화 쪽에서도 사기를 치기 위해 영화에
대한 지식도 적극적으로 습득한다. 일단 공부를 시작하면 두문불출하는
학구파 사기꾼이다.

"사기 치는 사람이나 사기 당하는 사람이나 똑같은 생활인입니다. 오
히려 사기꾼이 더 진지해보이죠. 절대로 이상한 제스처를 써서는 안되고
말끝마다 뉘앙스를 많이 남겨야 합니다. 표정이 풍부한 것보다는 무표정
이 유리합니다. 상대방이 표정에서 이 사람이 지금 무슨 생각하고 있는
지를 읽지 못하게 해야 하죠. 가만 보면 백 관장은 거의 최면술 수준으
로 말을 잘하는것 같아요. 특히 상대방의 기대심리를 간파해서 이용하는
재주가 놀랍습니다. 백 관장은 때에 따라 이 사람도 됐다, 저 사람도 됐
다 합니다.".

백씨의 말대로 백 관장 사기술의 가장 큰 특징은 미끼, 유인물을 잘
던져놓는 것이다. 결혼 못한 노총각 박씨(명계남분)에게는 연변 처녀 단
옥이를 소개해주면서 만사 제쳐놓고 자신에게 협조하게 한 것이 대표적
이다. 백씨는 "뛰어난 사기꾼이 되려면 남들보다 부지런해야 합니다. 남
보다 언제나 한발 앞서가야 하니까요. 또 평소에 고민을 많이 하면서 고
민하는 모습을 많이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고민 할 때는 모택동이 중국
인민을 어떻게 하면 먹여 살릴까로 고뇌하는 그런 고통스런 표정을 연출
해야 효과가 있습니다"고 말했다.

백씨는 백 관장이 선천적으로 사기성이 있는 인물이지만 그의 사기에
는 철학이 담겨 있다고 한다. "절대 나만 잘 살자는 것이 아닙니다. 한
건을 잘해서 달 동네 식구들을 물질적으로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면 나
는 '파랑새 사기꾼'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확고하다는 설명이다. 백씨
는 이제는 백 관장을 이해하게 됐다고 한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어쩔 수 없이 사람은 주특기를 발휘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닙까. 완벽하
게 성사시키기 위해 연구하는 것이 쉽습니까. 오피스텔에서 줄담배를 피
워가며 전문 서적을 탐독하는 모습이 철저한 프로 같습니다.".

하지만 그 노력에 비해 성과물은 그다지 없는 듯하다. 어디까지나 잔
챙이 사기였을 뿐이다. 초기 단계에서는 차력하는 동생들을 지방으로 데
리고 다니면서 대충 챙겨서 서울로 뜨고 뒷처리는 동생들에게 맡기는 방
법을 썼다. 동생들은 "우리가 한두 번 당하냐"는 분노의 목소리만 낼 뿐
이었다. 둘째는 천막극장을 차려 백무신천이라는 건강 보조 식품을 판매
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샹그릴라의 연예인을 동원해 차력 공연을 시키
면서 개런티는 주지 않았다. 대신 하나에 20만원 하는 보조 식품을 주며
"이 약 너무 좋다.

많이는 못 준다. 2개씩 주겠다. 요즘 사람들이 얼마나 영리한데 약이
라고 팔면 누가 사겠느냐. 백두산 일대에서 채취한 건강 식품이라고 팔
라"며 닭 잡아먹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이 천막극장도 박씨에게 감언이
설로 넘겨주었고 박씨는 결국 그 극장을 들어먹고 만다. 삼차는 영화 쪽
에서 일을 벌인다. 자기 동생들을 스턴트 맨으로 진출시키면서 영화계
사람들에게 "오픈세트를 만들겠다, 한·중 합작 영화를 찍겠다"고 떠벌
이고 다니면서 대형사기를 모색중이다.

그 백 관장도 강적을 만났다. 아마데우스 마담(황정아분)은 결코 만
만한 상대가 아닌 것 같다. 백씨가 보기에도 그녀는 뛰어난 사기꾼이다.

작가와 연출자도 백씨가 당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힌 것 같다.

누구와 얘기하고 있을 때 백 관장의 눈을 클로즈업으로 보여주면 시
청자들은 "아, 이 친구 사기 치는구나" 하고 알 수 있다. 하지만 마담과
대화할때는 정반대이다. 이때는 마담의 눈을 보여준다. "다 알어 임마"
라는 뜻이다. 이 여자도 보통 여자가 아니라는 복선을 깔아놓은 것이다.

● "백관장은 낭만적인 사기꾼".

백씨는 이에 대해 "드라마 속에서는 내가 당하는 것으로 설정돼 있지
만 실제 삶 속에서 완벽한 사기가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완벽하게 당
하면 완벽하게 성공한 것 아닙니까. 실제 당한 쪽에서 창피해서 안 알려
서 그렇지 완벽한 사기는 얼마든지 있었을 겁니다"고 말한다.

이 드라마는 분명 희망을 말하고 있다. 백씨도 '파랑새는 있다'고 믿
고 있을까. "물론입니다. 이 드라마는 열심히 살면 행복과 사랑이 따른
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순수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적나라
한 모습들을 보여주면서 '사기성 있는 한 인간도 우리 이웃'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죠.".

백씨는 실제로 사기를 당해본 적은 없다고 한다. "시청자들은 상대방
을 쥐어짜면서 사기 치는 것이 아니라 웃기면서 사기 치기 때문에 좋아
하는 것같습니다. 백 관장은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사기꾼이 아니라 낭만
적인 사기꾼입니다. 시청자에게 저렇게 살아서는 안된다는 희망을 줍니
다." 사기꾼은 은어로 접시꾼이라고 한다. 사람 속이는 것을 접시 돌리
듯 쉽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백씨는 "사기는 결코 쉬운 게 아니
다"는 사실을 배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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