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두통과 고열, 전신 발진에 구토, 설사로 탈진해 응급실에
실려온 뒤 나는 계속 혼수상태였다. 신장이 어떻게 됐는지 소변도 볼수
없었고, 링거만 계속 맞아 배가 고무풍선처럼 부풀었다. 사흘만에 의식
은 돌아왔지만, 고열은 계속됐고 발진은 더 심해졌다. 구토때문에 아무
것도 먹을 수 없었다. 1주일동안 갖가지 검사를 받은 끝에 결론은 루퍼
스로 나왔다.

90년1월의 일이다. 낯선 병명에 얼떨떨했지만 처음엔 그리 심각하
게 여기지 않았다. 죽을 것처럼 고통스러우면서도 당장 죽는 병은 아니
라니 다행스러울 뿐이었다. 왜 다른 환자나 간호사들이 내 병명을 듣고
놀라 걱정해주는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병명을 알았으니 이제 낫겠구나"고만 생각했다. "계속 조심해야
한다"는 의사 경고도 흘려들었다. 바로 그때부터 병에 대해 공부하고
좀 더 조심했더라면 4년뒤 끔찍한 고통은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무엇이든 두려움을 가질 때 조심하게 되는 것 같다. 두려움은 경
험을 통해 온다. 내가 루퍼스에 두려움을 갖고, 내 생활과 인생관까지
바꾸게 된 것도 4년 뒤 찾아온 두번째 발병 때문이다.

첫번째와는 비교도 안될만큼, 죽었다가 겨우 살아나는 호된 고통을
겪고서야 비로소 내가 평생 안고 살아야 할 병의 실체가 잡히는 것 같았
다. 만성 질환자에게 자기 병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이해가 얼마나 중
요한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때부터 나는 루퍼스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이 정보를 많은 환자와 함께 나누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다시 4년이 지났다.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고, 약을 복용하
고 있지만 지금 나는 정상인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내가 8년째
앓고있는 루퍼스는 많은 류머티스 질환 가운데에서도 가장 심각하다.

관절과 근육은 물론 피부, 신경조직, 폐, 신장, 심장과 조혈기관에
까지 영향을 주고, 심하면 목숨까지 잃게 된다고 한다.

불과 10년전만 해도 발병 10년안에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지금은 좋은 약이 많이 개발돼 적절한 투약과 요양으로 조절할 수 있는
질환이 됐다고 한다.

다른 병도 마찬가지겠지만 루퍼스 치료에서도 정확한 조기진단과
류머티스 전문의의 적절한 치료가 중요하다. 그러나 환자의 꾸준한 자기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병을 이겨내는 것은 환자
자신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병을 이
해하도록 노력하며, 병을 이기는데 도움이 되는 쪽으로 생활 자체를 바꿔
가야 한다. 물론 가족과 친지의 이해와 협조도 필요하다. 사랑은 어떤
어려움도 이기는 마력을갖고 있다.

병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루퍼스를 이기는 사람들 모임'이 매달
둘째와 넷째 토요일 오후2시 한양대병원 류머티스센터에서 열린다.

보다 많은 환자와 환자 가족이 참석해 정보를 공유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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