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권 쥐고서도 형 먼저 등극시켜…모양-절차에 유난히 신경 ##.
예나 지금이나 권력을 향한 엘리트 그룹의 정치적 '파워 게임'이나,
권력쟁취를 위한 싸움에서 '정글의 법칙'(승자만이 살아남는)은 조금
도 변함없는 것 같다.
지금부터 6백년 전 조선 왕조 창건 때 왕위를 계승하기 위한 치열
한 암투속에서 살아남아 등극한 이방원의 정치적 행보가 '용의 눈물'
이라는 드라마를 통해 다시 부각되고 있는 것은 무엇을 시사하는가.
방원의 왕위 계승 철학은 무엇이며 무엇이 그를 승리로 이끌게 했는가.
방원은 대단히 치밀한 성격의 소유자이며 결단력과 돌파력, 지도력
과 포용력을 두루 갖춘 폭넓은 성격의 소유자이다. 정적을 치되, 후에
인물을 골라 기용할 줄 아는 포용력,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결단력, 인
륜과 민의를 보살피는 인치 정책을 펼 줄 아는가 하면, 당장의 권력보
다 먼 훗날을 위해 인내도 할 줄 아는 폭넓은 정치적 시각도 가지고
있었다.
태조 이성계로부터 세자 책봉을 받은 서자 방석과 그의 추종자 정
도전 세력을 제거하고도 방원은 왕권을 형 방과(정종)에게 넘겨주었다.
'권력은 내게 있지만 조선 왕조의 전통 계승을 위해 형이 먼저 왕위에
등극하는 것이 도리'라는 설득을 앞세웠다. '왕권욕'은 있되 섣불리
드러내지 않았고, 권력은 잡았으되 '순리의 도리'는 지켰다.
●탁월한 정치력에 측근 충성·역량도 한몫.
방원의 권력 승계 철학은 한마디로 합리적·순리적 승계였으며 이
또한 방과(정종)의 정치 역량 부족을 간파하여 순조롭게 승계하자는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방원의 정치 역량에 패배한 사람은 참으로 많다. 먼저 서자 방석에
게 세자를 책봉한 이성계가 방원의 세력에 밀려 그뜻을 이루지 못했고,
이성계의 후궁이며 계비인 방과의 모친 강씨 또한 야망을 이루지 못했
다. 방석을 옹호했던 정도전이 방원에게 살해되었으며 왕위에 오른 방
과 역시 방원 세력의 압력으로 방원에게 왕권을 내준다.
그러나 이러한 승리 앞에 방원은 반드시 백성들을 설득할 무기를
앞세웠다. '건국 초부터 서자에게 왕권을 내주면 왕국의 기초가 흔들
린다'는 대의명분이었다. 그리고 백성들은 이 뜻에 동조하여 방원이
왕위에 등극했을 때 흔들리지 않았다. 방원이 이처럼 험난한 과정을
거쳐 왕위에 오르게 된 것은 탁월한 정치력 덕분이다. 하지만 측근과
참모들의 역량과 충성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요건이다. 지금의 국방장
관에 해당하는 관직에 있던 이숙번과 당시로서는 성향이 대단히 진취
적인 민씨 부인이 그들이다. 참모와 부인은 방원의 왕위 등극에 지대
한 공로를 끼쳤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의 하여가로 정몽주를 설득하
다 실패하자 선죽교에서 그를 살해하는 결단력, 권력 쟁취 후 왕위를
형에게 넘겨주는 대의명분. 정적들을 재기용하는 포용력. 정적 제거에
끝까지 죄의식을 떨치지 못한 인간미. 민심에 귀기울이고 서민 통치에
힘쓴 자상함. 아버지(태조)에게 죄 사함을 받기 위해 끝까지 차사를
보내돌아오지 않는 그 유명한 '함흥 차사'를 만든 끊임없는 참회의 노
력.
어떤 상황에서도 대의명분을 앞세우는 그의 정치 철학은 6백년이
지난 오늘날, 그리고 대권을 눈앞에 둔 각 정당 후보들에게 많은 의미
를 던져주고 있다.
지금의 대통령 후보들은 어떤 대의명분으로 출마하고 있는가. 집권
후 정적들을 재기용할 포용력은 있는가. 무너지고 부서진 경제력과 흐
트러진 민심을 수습할 대책은 준비하고 있는가. 민의에 귀는 기울이고
있는가. 정치적 파워 게임을 당당한 자세로 펼치고 있는가. 과거 정치
적 행보에 반성할 부분은 없는가. 있으면 솔직히 반성할 준비는 되어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