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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륜(1347∼1416)
욕심 많고 잔꾀에 능한 모사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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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복과 이색에게서 학문을 배웠고, 1365년 문과에 합격하여 1367년
춘추관 검열이 되었다.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쳐 우부대언 등의 관직에
올랐고, 1388년 최영이 요동을 공격하려 하자 이를 반대하다 유배되었
다. 그후 위화도회군으로 최영이 제거되자 복관되었고, 1392년 조선 개
국에 참여하여 도읍을 정하는 일에 관여하는 등 중추적 역할을 하다 명
나라와 표전문 시비로 정도전과 대립하여 계림부윤으로 좌천되었다.
이 무렵 그는 민제와 친하게 지내며 이방원에게 접근하여 그의 책사
역할을 하다 마침내 제1차 왕자의 난으로 이방원이 정권을 장악하자 정
사공신 1등으로 진산군에 피봉되었다. 그리고 태종이 즉위한 후에는 승
승장구하여 의정부좌정승, 세자 스승 등을 역임하고 영의정부사에 이르
렀다.
이처럼 그는 난세를 적절히 이용하여 탁월한 정치가로 명망을 높였으
나 한편으론 인사 청탁을 많이 받고 재물을 탐하였다. 심지어 고양포의
간척지 수백 섬지기의 농장을 착복하기도 하고, 신덕왕후 강씨의 능에
딸린 땅을 줄여 자신이 차지하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여러 차례 대간
의 탄핵을 받았으나 공신이라 하여 묵인되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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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번(1373∼1440)
절대적 신임받은 안하무인 기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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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3년 문과에 급제한 당시의 신세대 인물이다. 이방원에게 접근하여
출세의 길을 닦았는데 제1차 왕자의 난 때에는 지안산군사로 있으면서
무력을 동원하여 정도전 세력을 제거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이
공로로 정사공신 2등에 책록되어 우부승지에 올랐고, 1400년 제2차 왕
자의 난이 일어나자 역시 이방원을 도와 공을 세웠다. 이후 그는 출세
가도를 달리며 중군총제, 참찬의정부사, 병조판서 등을 거쳐 1413년에
는 벼슬이 종1품 의정부 좌참찬에 이르렀다.
이렇듯 그는 태종의 절대적 신임을 받으며 성장하였으나 지나치게 오
만 방자하고 무례하여 물의를 일으키는 일이 잦았다. 이 때문에 여러
차례 대간의 탄핵을 받아 결국 삭탈 관직되어 1417년 경상도 함양에 유
배되었고, 결국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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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무(?∼1414)
군졸 출신 난세의 행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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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귀화한 집안인 조세진의 서출로서 조온, 조인옥 등과 인척지
간이다. 그는 출신이 미천하여 처음에는 일개 군졸에 불과하였으나 나중
에는 우정승에 오르는 대표적인 난세의 행운아다. 그는 애초에 이성계의
사병이 되어 공을 세운 덕분에 출세의 길을 열었고, 1392년 이방원의 명
을받아 조영규와 함께 정몽주를 격살한 공으로 이성계의 신임을 얻게 되
었다. 이후 조선이 개국되자 개국공신 3등에 책록되었고, 1397년에는 충
청도 도절제사에 이르렀다가 이듬해 제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을 도와
정사공신 1등에 봉해졌다.
이 사건 이후 이성계는 그의 배은 망덕을 개탄하였으나, 그는 이에 개
의치 않고 이방원을 도와 다시 제2차 왕자의 난 때에도 공을 세운다. 하
지만 정권을 장악한 이방원이 사병 혁파를 내세우자 이를 반대하다가 황
주에 유배되는 지경에 이른다.
그러나 그의 유배 생활은 오래 가지 않았다. 1400년 이방원이 왕위에
오르면서 유배지에 있던 공신들을 대거 풀어주었고, 그도 이 때 사면되
어 평양부윤으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1405년에는 우정승, 1409년에는 훈
련관도제조에 오르는 등 비교적 순탄한 출세 가도를 달렸다. 1412년 자
신이 추천한 박영우가 수군첨절제사에 위임을 거부하자 일시 유배당하는
고초를 겪기도 하지만 얼마 뒤 풀려나 만년을 편안하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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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로…유배지서 숨진 양녕대군 장인
본관은 광산이며 태종의 장남 양녕대군의 장인이다. 1404년 이조전서
에 올라 있다 이듬해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는데, 명나라에 머무를
때 행상들을 거느리고 가 사적인 이익을 챙겼다가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
다. 하지만 1407년 그의 딸이 양녕대군과 혼인하면서 정계에 복귀하여
벼슬이 종1품에 이르렀다. 그런데 1418년 세자궁에 여자를 출입시키는데
가담하여 대간의 탄핵을 받아 칙첩이 몰수당하고 죽산에 유배되었다. 이
후 나주 등지의 유배지를 전전하다가 그 곳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정역…효령대군 장인, 조용한 처신으로 무사
본관은 해주이며 태종의 둘째 아들 효령대군의 장인이다. 1383년 이방
원과 함께 문과에 장원하였으며, 그 인연으로 태종의 사돈이 되었다. 한
성부윤, 충청도관찰사, 예조판서, 호조판서, 대제학 등을 역임하였으나
행동이 곧고 별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은 덕분에 탄핵을 받거나
문란을 일으키는 일은 없었다.
●심온…세종의 장인 됐으나 모함에 희생
본관은 청송이며 세종의 장인이다. 1408년 당시 충녕군으로 있던 세종
을 사위로 맞아들이면서 왕실과 인척 관계를 맺었으며, 정치적 영향력도
높아졌다. 그 후 양녕대군이 세자에서 쫓겨나고 충녕군이 세자에 올라
왕위를 계승하면서 국구(국왕의 장인)에 오른다. 또한 이때 영의정에 임
명되어 정권 중심에 서게 되었다. 하지만 그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태종이 좌의정 박은과 짜고 그의 동생 심정이 태종의
군권 장악을 비판하였다는 죄목을 씌워 죽음에 이르게 한다.
●이거이… 정순공주 시아버지로 영의정까지 올라
본관은 청주이며 아들 저가 태조 이성계의 장녀 경신공주와 결혼하면
서 왕실과 가까워졌다. 아들 백강 또한 태종의 장녀 정순공주와 혼인하
여 태종과는 겹사돈 관계에 있었다. 제2차 왕자의 난 이후 당시 세자에
올랐던 이방원이 사병 혁파를 추진하자 이에 반대하다 한때 계림부윤으
로 좌천되기도 했다. 그러나 곧 중앙으로 불려와 영사평부사를 역임하였
으며, 이후 대간의 탄핵을 받아 일시 유배되는 신세가 되기도 했으나 복
관되어 우정승 등을 거쳐 영의정에 오르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조준…정도전에 반기 든 경정공주 시아버지
본관은 평양이며 아들 대림이 태종의 둘째딸 경정공주와 결혼함으로써
왕실과 인척 관계를 맺었다. 1374년 문과에 급제하여 탁월한 정치력을
발휘하였고, 이 덕분에 비교적 일찍 정계의 중심 인물로 떠올랐다. 그
후 1388년 위화도 회군에 성공하여 실권자가 된 이성계와 돈독한 관계를
맺으면서 대사헌에 발탁되었고, 정도전 등과 더불어 전제 개혁을 이끌며
역성 혁명을 추진하였다.
조선왕조 성립 이후에는 정도전이 방석을 세자로 세우려 하자 이에 반
대하여 이방원을 세자로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정도전의 요동 정
벌론에도 반대하여 정도전과 대립한 대표적 정치인으로 인식되었다.1398
년 1차 왕자의 난이 발생하여 이방원이 정권을 장악하자 정사공신 1등에
피봉되었으나 1400년 민무구 형제에게 탄핵을 받아 한때 옥에 갇히는 신
세가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곧 풀려나와 좌정승, 영의정부사 등을 역임
하며 만년을 권좌에서 보냈다.
●권근…당대의 석학, 경안공주 시아버지
본관은 안동으로 이색에게서 학문을 배우고 정몽주 이숭인 정도전 등
당대 석학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대학자이다. 1404년 아들 규가 태종의
셋째딸 경안공주와 결혼함으로써 왕실과 인척 관계를 맺었다.
1367년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왔으며, 정몽주 정도전 등과 배원친
명을 주장하며 정치적 입지를 닦았다. 1390년 이초의 옥사에 연루되어
청주, 익주 등에 유배되었다가 조선왕조 개국 당시에는 충주에 묻혀 지
내며 학문에 열중하였다. 그러다 1393년 태조의 부름을 받고 다시 관직
에 진출하여 정당문학,대사헌 등을 역임하고 조선왕조 최초로 문과 중시
의 독권관이 되어 변계량 등 10인을 뽑았다. 저서로 '입학도설' '오경천
견록' 등이 있고 정도전의 '불씨잡변'에 주석을 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