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이승택씨는 실험정신과 도전정신으로 똘똘뭉친 '영원한 젊은
이'다.
작가생활 50년이 가까워 오는 동안 끊임없이 새로운 작품을 내놓았
다. 그의 작품에서 매너리즘이란 단어는 찾아볼 수가 없다. 올해 65세
이지만 지금도 어떤 청년작가 못지 않게 길들지 않은 야생마처럼 펄펄
뛴다. 그런 그가 12일부터 24일까지 동숭동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에서
초대전을 갖는다. 올해부터 봄-가을로 실험적인 젊은 작가들을 초대하
기로 결정한 문예진흥원이 첫 순서로 그를 선정한 것도 우리 화단에선
유래를 찾기 힘든 그의 실험정신을 높인 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노래도 세번만 들으면 질립니다. 몇몇 사람들의 호평에
안주하기보다는 내가 하고싶은 대로 하다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중요
한 것은 예술가가 한 경향이나 사조에 안주하느냐, 자유를 찾아 모험을
하느냐의 차이입니다.".
그의 작품편력을 보면 엄청나다는 느낌이 든다. 홍익대 재학중 구상
조각에 탐닉했다가 인체조각만이 조각인양 인식될 때인 50년대말부터
오지와 돌을 이용한 오브제작품을 내놓더니 60년대 후반 들어서는 살아
있는 나무에 천을 묶어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을 '잡는' 설치작품을 선
보였다. 그후로도연기와 불, 물, 안개 등을 이용한 형체없는 조각을 내
놓았고 바위에 이끼를 심거나 풀밭에 봉수대나 원시인들의 돌무덤처럼
돌을 쌓기도 하는 등 첨단을 달렸다. 이미 '조각'이란 좁은 울타리를
벗어난 작업들이었고 매번 발표 당시엔 너무 앞서나가있어 미술계의 인
정은 커녕, 빈정거림만 샀고 그는 외톨이가 됐다. 그는 그의 반골인생
의 출발점이 56년 제2회 국전때부터라고 회상한다. 당시 좌대 위에 천
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을 함께 올려놓은 작품을 냈더니 심사위원들이
"좌대 위에는 한 개의 작품만 놓아야 한다"며 철회를 요구한 것을 겪으
면서 '도저히 이들과는 못 어울리겠다'고 생각했다는 것. 그는 더 나아
가 학맥-인맥 등 미술계를 비판하는 공개적인 문제제기 등으로 미술계
의 따돌림을 받았다.
그는 "내 작업의 요체는 상식화된 것을 뒤집어 변화하는 것이며 그
변화과정에 예술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과거의 상식과 사고방식을 뒤
집는 시각의 변화가 바로 예술발전의 원동력이며 "학맥이나 따지며 뭉
쳐다니는 것은 약자나 얼간이들이 하는 짓"이라는 얘기다.
교수도 아니고 편을 들어주는 사람도 별로 없고 화랑에서 전시할 수
없는 성질의 작품들이다보니 생활이 어려울 법 하지만 그는 기념물 조
각으로 생계를 해결해 왔다는 점도 특이하다. 이미 대학재학 중 인천
자유공원의 맥아더동상과 남산의 김구선생상 등의 제작에 참여했을 정
도로 탄탄한 구상조각실력으로 기념동상을 제작, 돈을 마련해 하고 싶
은 작업을 마음껏 해온것.
40여년에 걸친 미술인생을 중간 정리하는 회고전 형식으로 마련된
이번 전시에서 그는 전시장 전체를 하나의 작품처럼 대학졸업작품부터
최근작까지 예닐곱 세트를 펼쳐놓을 예정이다. 공원 등에 설치된 작품
이 많아서 일부 조각과 캔버스작업, 오브제작업을 제외한 작품들은 퍼
포먼스 등을 촬영한 사진위주로 이뤄지지만 그의 아방가르드 인생 40년
을 느끼기엔 충분할 것 같다. 이씨는 "진지하고 도전의식이 강한 젊은
작가들이 많이 와서 봐줬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