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1923∼1977)의 20주기(9월 16일)를
맞아 그를 추억하는 행사들이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칼라스가 노래한
오페라 전곡은 물론 미공개녹음이 음반으로 나오고, 그가 입었던 의상과
장신구를 모은 전시회, 그를 주제로 한 연극이 팬들을 불러모은다. 그런
가 하면 칼라스는 남자동성애자(게이)를 집요하게 사냥한 요부였다는 이
색주장도 제기돼 화제다.
칼라스가 혈통을 물려받은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칼라스국제회의가 11
일 개막, 15일까지 열린다. 원형경기장입구에 '꺼지지 않는 칼라스 불'
을 점화하고, 화장한 그의 재를 뿌렸던 에게바다에 화환을 바치는 순서
로 추모행사는 절정을 이룰 전망이다. 칼라스의 오페라 데뷔 50주년이
겹친 이탈리아의 열기도 뜨겁기는 마찬가지. 밀라노의 라스칼라오페라극
장에서 칼라스전시회가 13일 개막, 무대의상-구두-핸드백-장신구 60점을
선보인다. 칼라스의 전속음반사 EMI는 올들어 칼라스의 오페라 전곡 음
반 29종을 냈고, 내년초까지 리사이틀-미공개녹음 13종을 더 찍어낸다.
칼라스의 남성편력은 새삼스런 얘기가 아니다. 그는 47년 '라지오콘
다'(베로나)로 데뷔, 65년 '토스카'(런던)를 끝으로 무대를 떠났다. 20
년채 안되는 짧은 무대인생이다. 이런 칼라스의 조로를 놓고 섹스탐닉이
예술을 망가뜨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여인'이 꽃피자 '예술'이 시
들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를 두고 재클린 케
네디와 '연적'관계가 된 것은 너무나 유명하다.
그러나 칼라스가 정상적 남자와 나눈 사랑은 게이를 사냥하는 연료에
불과했다는 주장은 매우 도발적이다. 이런 주장을 한 인물은 데이비트 브
레트.
독일여배우 마를렌 디트리히의 전기도 쓴 그는 지난달 펴낸 '마리아
칼라스:암펌과 양'이라는 책에서 "칼라스는 게이를 '진짜 여성'을 모르는
위인들로 여기고 자신이 진짜 여성임을 내세웠다"는 것이다. 브레트는 칼
라스의 공연장에 '칼라스 보이'로 통한 게이들이 많았고, 이들은 종종 칼
라스의 라이벌이었던 레나타 테발디를 깎아내리는데도 앞장섰다고 지적한
다. 브레트가 꼽는 '칼라스 리스트'에는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 영화감
독 프랑코 제피렐리, 루치노 비스콘티도 들어있다.
미국에서 칼라스는 연극-영화로 되살아나고 있다. 여배우 페이 더너웨
이가 칼라스를 연기하는 '마스터클래스'가 캔사스-새크라멘토 등지서 순
회공연중이며, 더너웨이는 이 연극을 곧 영화로 제작한다. 국내에선 케이
블TV 'A&C 코오롱'이 다큐멘터리 '마리아 칼라스'를 16일 오후5시 방영한
다. 칼라스의 공연장면과 인터뷰, 그의 명콤비 테너 스테파노, 첫 남편
메네기니, 영화감독 제피렐리와 비스콘티가 오페라여신의 삶을 증언한다.
토니 팔머가 감독한, 87년 뉴욕영화제 수상작(작품상)이다.
칼라스는 미성도, 미모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를 빼고 오페라를 말할
수는 없다. '노르마' '루치아' 등 주옥같은 벨칸토 레퍼터리가 칼라스로
해서 빛을 보았다. 오만한 칼라스를 야유하러 공연장을 찾은 사람들도 일
단 칼라스가 노래하면 넋을 놓았다. '칼라스 매직'이다. 제피렐리는 이런
칼라스를 빗대 "오페라에서 BC(비포 크라이스트·기원전)는 '칼라스 이전
(비포 칼라스)을 의미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