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민의 열린공간… 쿠리아선 카이사르 외마디 비명 들리는듯 ##.

나는 지금 키 큰 우산 모양의 소나무가 울창한 팔라티누스 언덕을
거닐고있다. 그들이 곳곳에 서서 싱그러운 그늘을 만들어 주는데다 무
슨 사연이있는지 매미마저 쉬지 않고 울어대니 마치 시골길을 걷는 기
분이다. 그러나 눈 앞에는 온통 붉은색 규격 벽돌을 아주 빈틈없이 단
단하게 쌓아올린 두꺼운 벽체 천지다. 문과 벽감이 있었던 곳에는 아
치형구조가 역력하다. 저토록 견고한 구조였기에 오랜 세월을 이기고
저 같은 형체를 지닐 수 있었으리라.

로마 건국 전설에 따르면 로마의 건설자 로물루스가 처음 도시를
세운 곳이 바로 이곳 팔라티누스 언덕이다. 그때가 기원전 753년. 초
기 정치 형태는 물론 왕정이었다. 영어의 왕궁을 뜻하는 팰리스(Palace)
의 어원이 되는 팔라티누스 언덕에서 로마의 왕궁을 찾아보았다. '도
무스 아우구스투스' '도무스 플라비스' 등이 바로 그곳이라고 안내서
는 일러두었으나 그 역시 벽체만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 당시 화려했
던 모습은 간데없다. 대신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그 언저리를
메우고 있다.

팔라티누스 언덕 아래엔 '포로 로마노', 즉 로마 광장이 펼쳐져 있
다. 좁고 긴 광장에는 조각난 대리석 기둥들이 흩어져 폐허처럼 보였
다. 그러나 그곳은 세계 제국이었던 로마의 정치와 경제·문화가 역동
적으로 펼쳐지던 공간이었다. 그래서 당시 로마인의 생활상을 떠올려
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인 것이다. 시민들은 요구 사항을 상부에 전달
하는 공간으로 활용했고 정치가는 물론 학자 예술가 상인 그리고 시민
들이 모여들어 로마 문화를 숙성시켰다.

● 카이사르가 피뿌린 원로원 '쿠리아'.

광장의 시원은 그리스의 아고라다. 아고라가 로마로 들어오면서 포
로(Foro, 영어로는 Forum)가 되었다. 단지 명칭만 바뀐 것은 아니었다.

포로는 아고라와 달리 모든 사람에게 열린 공간이었다.

그리스는 도시 국가 집합체였고 직접 민주 정치 원형을 보여준 도
시 국가아테네는 오직 부모 모두 아테네 시민권을 가진 사람에게만 시
민권을 부여했다. 아테네에 오래 살고, 또 아테네 발전에 크게 이바지
했더라도 혈통적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아테네에서는 시민권을 얻을
수 없었다. 그러나로마는 달랐다. 로마는 그 영역 안에 사는 모든 사
람을 로마 시민으로 대우했던 것이다. 이것은 로마가 도시 국가가 아
니라 세계 국가가 될 수 있는정신적 기반이 되었다.

많은 신전과 바실리카, 그리고 개선문 등의 흔적이 뚜렷한 포로 로
마노에는 하얀 대리석 기둥 세 개가 하늘 높이 솟아 있다. 로마 건국
과 관련된 베스타 여신의 신상을 안치했던 베스타 신전을 이루던 기둥
이다. 그것은 또한로마의 행운을 빌어주기 위해 세운 기둥이기도 했다.

로마 광장의 압권은 뭐니뭐니해도 '쿠리아'(Curia)라고 하는 원로
원 청사다. 카피톨리노 언덕 바로 아래 있는 이곳에서 로마 역사를 바
꾼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광대한 영토를 효율적으로 지배하기 위
해 공화제를 실시하고 있던 로마에 갈리아 전투를 승리로 이끌면서 등
장한 새로운 실력자 카이사르는 황제를 꿈꿨다. 그래서 황제를 선임할
것인가를 논의하기 위한 회의가 기원전 44년 3월 15일 이곳 원로원에
서 열렸다. 회의가 막 시작되려는찰나 단하의 브루투스가 카이사르를
향해 단검을 휘둘렀다.

"브루투스, 너마저도…"라고 카이사르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고 브
루투스는 "나는 카이사르를 사랑했다. 그러나 로마를 더 사랑했다"는
말로 자신을 변호했다. 이 일화는 포로 로마노와 함께 오랫동안 잊히
지 않을것이다.

포로 로마노가 끝나는 곳에 라틴어로 '거대한 건축물'이란 뜻의 콜
로세오가 버티고 있다. 5만여명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타원형 경
기장은 원래 4층 높이였으나 지금은 상당 부분 허물어져 3층, 2층으로
남아있는 곳이 더 많다.

육중한 벽체 사이로 난 아치형 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간다. 당초
마루였다는 경기장 바닥은 없고 야수 우리만이 앙상한 몰골을 드러내
놓았다. 아레나(Arena)를 위에서 감싸고 있는 관람석마저 허물어져 붉
은 벽체를 마구 드러내놓아 거칠고 투박하기 이를 데 없다. 아레나를
둘러본 사람들은 어느새 고대 로마인이 되어 관람석으로 오른다. 거기
서 맹수의 공격을 받아 얼굴이 일그러진 벌거숭이를 떠올린다. 이어
연방하얀 이를 드러낸 채 뭐라 계속 소리지르는 화려한 복장의 인간도
보인다.

콜로세오 옆에는 백색 개선문이 서 있다. 콘스탄티누스의 마그센티
누스 승전을 기념해 세운 것이다. 로마 땅에선 이만큼 크고 또 아름다
운 개선문은 더 이상 없다. 전쟁을, 그리고 승전을 이처럼 화려한 기
념물로 남긴 민족이 로마말고 또 어디 있단 말인가.

● 카피톨리노 언덕은 영어 Capital의 어원.

콜로세오에서 트라야누스 황제의 기둥이 서 있는 황제의 광장(포라
임페리알리)으로 달려갔다가 백색의 임마누엘 비토리오 기념관 뒤에 솟
아있는 카피톨리노 언덕으로 오른다. 수도를 뜻하는 영어 Capital의 어
원이 된다는 카피톨리노 언덕 위에는 지금은 시청사로 변해버린 원로원
궁전과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왕궁이 있다. 그 박물관 한 쪽 벽면에 기
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석재 두상이 걸려 있고, 광장 입구
와 박물관 안에는 늑대 젖을 먹고 있는 로마 시조 로물루스 형제 조각
이 있다.

팔라티누스와 포로 로마노, 콜로세오, 카피톨리노 일대는 고대 로마
현장이다. 고대 로마 현장은 한때 세계를 제패했다는 영광만을 드러내
놓고 있는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작은 도시 로마가 어떻게 세계를 제
패했으며, 로마는 어째서 영원한 도시가 될 수 있었는지를 들려주고 있
었다. 그렇다면 2천5백여년 동안 지탱해오는 로마의 생명력은 과연 어
디서 생겨난 것일까.

어떤 이질적인 것까지도 거뜬히 받아들일 수 있었던 그 왕성한 소화
력에 근거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그것을 보편성이란 말
로 바꿔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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