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박주영기자】"아지매! 물좋은 갈치, 사가이소." "천원만 깎아
주소." "아재, 꼼장어 한접시 먹고 가소.".
부산 중구 남포동 자갈치시장은 언제나 북적댄다. 큰소리로 손님을
끄는 자갈치 아지매, 흥정하는 주부, 물건을 나르는 짐꾼…. 상가 안은
상가 안대로, 길 위의 좌판이나 포장마차에서는 그들대로 동작과 소리
가 어우러져 생동감이 흘러 넘친다. 사진작가 최민식씨의 "진정한 이웃
의 모습을 길어낸다"는 말처럼 '삶의 현장'임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
다.
자갈치시장은 남포동 1가에서 6가까지 해안을 따라 길쭉하게 형성돼
있다.
폭 4∼6m 정도 도로를 사이에 두고 좌우에 상가가 있고, 길에는 노
점상이 줄지어 있다. 시청쪽으로 가장자리에는 2백여 점포가 밀집한 건
어물시장이 있고, 중심부 쯤에 수산물을 판매하는 부산어패류처리조합
과 신동아수산물시장 건물이 있다. 이 두 건물에 입주해 있는 가게만도
8백여개에 달한다.
길가 좌판에서 해삼-멍게-고래고기-생선 등을 파는 노점상의 정확한
숫자는 아무도 모른다.
'자갈치'란 이름은 자갈이 많은 데서 유래했다. 즉 자갈이 많은 해
안에 시장이 섰기 때문에 자갈치시장이란 이름이 붙은 것이다. 그러나
1930∼40년에 있은 해안매립으로 그 많았던 자갈은 모두 사라졌다. 일
제강점기 자갈치시장 자리는 주로 바다에서 잡은 물고기를 내리는 물양
장, 냉동고, 어물저장고가 차지했다. 물론 그 때도 생선 가게가 있었지
만 지금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그러나 45년 해방후 부산항으로 귀환동
포가 들어오면서 사정이 달라진다. 이들이 생계의 방편으로 건어물, 해
조류를 판자 위에 올려 놓고 장사를 한 것이 지금 모습의 시작이다.
여기에 6·25때 피란민들이 몰려들면서 부산의 자갈치시장은 전국적
인 '명성(?)'을 얻었다. 의지할 것 없는 피란민들이 너도나도 자갈치시
장에서 좌판을 벌였기 때문에 정식가게보다 노점상이 압도적으로 많았
다. 또 가게라 해봐야 거의 판잣집이었다. 굴곡진 인생에도 쓰러지지
않는 억척, 삶의 고난에 굴하지 않는 끈질긴 희망을 본성으로 하는 '자
갈치아지매'가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쯤이었다.
고난과 개발의 연대를 거치면서 자갈치시장의 겉모습은 많이 바뀌었
다. 70년 지은 어패류처리조합 건물이 화재로 전소된 뒤 86년 새로 개
축되고, 87년에는 현대식 건물의 신동아수산물시장이 문을 열었다. 그
러나 인생의 희로애락이 숨쉬는 자갈치시장의 본모습은 지금도 계속되
고 있다. 때문에 최민식씨에게 자갈치시장은 영원한 인간가족의 시장인
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