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시합일수록 연습처럼 하는 거야.} 카자흐스탄과의 일전을 하루 앞둔
5일 오후 잠실주경기장. 훈련이 거의 끝나갈 무렵 차범근 축구대표팀
감독은 최용수를 불러 몇가지 지시를 했다.
{알겠습니다.} 올림픽대표시절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카자흐스탄을 꺾던
당시 스트라이커였던 최용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러시아 프로리그에서 뛰고 있는 10명이 합류하지 못하고 대표팀 5명이
입국하자마자 바로 되돌아갔던 카자흐스탄이 수비중심의 전술을 들고
나올 것은 뻔한 일. 이제 최용수가 그 빗장을 힘차게 열어야 하는 사명을
부여받았다.
대학생이던 90년, 이탈리아월드컵 무대에 떨리는 가슴으로 첫 출전했던
홍명보는 이젠 팀의 최종수비와 함께 전체 플레이를 조율해야하는
최고참격. 홍은 훈련때면 누구보다 더 열심히 뛰고 앞장섰다. 당시
선배들이 어린 자신을 다독이며 제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도왔던 것처럼
이젠 자신이 그 역할을 해야 했다.
최용수가 골문앞으로 달려들자 하석주가 왼쪽에서 길게 센터링을 날려
주었다. 헤딩슛. 0.1초의 순간에 모든 것이 결정된다. 최는 자신의 감각을
최고조로 높이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했다.
부상으로 뛰지 못할 것이라던 고정운의 몸놀림이 가볍다. {단
10분만이라도 뛸 수 있다면 몸을 아끼지 않겠다}는 그는 후배들을 향해
연신 파이팅을 외쳐댔다.
양쪽사이드에선 이상윤과 서정원이 분주히 힘찬 날갯짓을 했다. 유상철의
부상으로 게임메이커의 중책을 맡은 이민성도, 그 자리를 메우게 된
김태영도 새롭게 부여된 역할을 차질없이 수행해 내려는 듯 비지땀을
열심히 흘렸다.
경기장 한 가운데 우뚝선 채 훈련모습을 지켜보는 차범근 감독은 입가에
조그만 웃음을 띠우며 신뢰감을 선수들에게 듬뿍 보내고 있었다. 월드컵
4연속 본선진출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모든 선수단이 몸으로 느끼고 있는
만큼 이제 모든 것을 선수들에게 믿고 맡길 뿐.
한국 선수단이 떠난 뒤 곧이어 몸을 푼 카자흐 선수들은 감독의 지시에
따라 수비포메이션과 중거리슛을 집중적으로 가다듬었다. 그들의
몸놀림은 비교적 가벼웠고 단신의 골게터 리트비넨코의 슈팅이
날카로웠다. 골키퍼 보스코보이니코프는 용수철같은 탄력으로 슈팅을
막아냈다. 만만한 상대는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