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사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김선홍 기아그룹 회장이 지난
2일밤 미국 포드자동차 등 해외제휴선들을 방문하고 귀국했다.
김 회장은 9일간의 외유기간중 "기아를 살린다는 확실한 보장만
있다면 언제든지 물러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 있을 때 그
는 조만간 자신의 거취를 밝히겠다(사표제출을 의미)는 뜻을 측근들
에게 전하기도 했다.
물론 김 회장이 사퇴의사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마음을 다 비웠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말을 수차례
되풀이했다.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가 소하리 공장을 방문하기 전, 서상목 의
원과 임창렬 통상산업부 장관을 만났을 때도 똑같은 말을 했다.
임 장관은 "김 회장이 '사나이 대 사나이의 약속'으로 경영권 포
기각서를 내겠다고 약속했었다"고 전했다. 유시열 제일은행장도 "김
회장이 개인적인 면담에선 사표 제출을 항상 약속한 뒤에, 회사로
돌아가선 이를 계속 번복해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회장은 언제나 "사표를 내겠다고 한 적이 없다"고 주
장하고, 임창렬 통산부장관의 발언에 대해서는 "임 장관과 만난 사
실도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 당국자와 채권은행단
에는 요즘 김 회장의 말을 전혀 믿지 않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물론 기아는 정부의 김선홍 회장 사표제출 요구는 '경영진 교체
기아 법정관리 삼성인수'를 추진하기 위한 일련의 '시나리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시나리오설은 그 진위를 지금으로선 명확히 가릴 수는 없
으나, 채권단의 협력 없이는 기아자동차가 회생할 수 없다는 사실은
너무나 명확하다.
이런 점에서 채권단은 얼마 전 기아그룹이 구세대 경영진을 퇴진
시키고, 차세대 경영진으로 완전히 물갈이한 것을 주목해 왔다. 따
라서 지금 김선홍 회장이 주력해야 할 일은 어떻게든 채권단의 자금
지원 약속을 얻어내는 일이고, 이 과정은 그의 희생 없이는 전혀 불
가능하다.
기아사태가 길어지면서 스스로 퇴직하는 직원들이 늘어나고, '김
선홍 회장 퇴진 결사 반대'를 외치던 기아직원 중 일부도 동요하고
있음을 김 회장은 알아둘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자동차 역사를 기록할 때, 반드시 기억할 인물로 김 회
장과 정세영 현대자동차 명예회장이 꼽힌다.
그는 누가 뭐래도 자동차산업의 불모지에 소하리공장-아산공장을
건설하고, 기술의 기아자동차를 탄생시킨 주역이다. 김 회장이 '한
국 자동차 산업의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영원히 남기를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