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서 한국 음악가들과 한국 청중 앞에서 연주할 수
있다는 것 이상 기쁜 일이 없지요. 어린 나이에 한국을 떠났지만 마음은 늘
한국에 있었습니다. 이제야 제일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7인의 남자들」 공연을 위해 일시 귀국한 세계적인 명성의 지휘자
정명훈씨(44)가 1일 마침내 KBS교향악단과 음악감독겸 상임지휘자에 대한
계약에 서명하고 기자회견을 가졌다.

공연을 앞둔 탓인지 정씨는 다소 피곤한 기색이었지만 오랜 숙제를 푼 듯
가볍게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이 KBS교향악단에 오기에 적당한 때라 생각했습니다. 파리
바스티유오페라극장 음악감독을 그만두고 여유가 생겼고, 나이가 들면서
우리 나라를 위해 무엇을할 수 있을까 하고 책임감을 느끼게 됩니다.』

정씨가 KBS교향악단 지휘자로 첫 제의를 받은 것은 벌써 13∼14년 전부터.
작년부터는 구체적인 조건을 두고 본격적인 협상이 오갔다.

오랜 망설임 끝에 정씨가 KBS행을 작심하게된 계기는 두 가지다.
KBS교향악단이 국내 최고의 교향악단으로 음악적으로 가능성이 많다는 것.
또다른 하나는 「음악을 통한 사회활동」에 관심많은 그가 공영방송 소속
교향악단을 통해 청소년과 환경을 위한 음악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

『KBS교향악단의 음악적인 성장은 장기간의 프로젝트로 생각하고 있어요.
성격상 일을 시작하면 힘을 모두 쏟는 편이지요. 그러나 현실적으로 파리
바스티유오페라시절처럼 모든 시간과 힘을 KBS에 쏟을 수는 없습니다.』

『한국의 음악가들은 재주도 좋고, 열심히 하지만, 너무 성급하고 기초가
약하다』고 지적하는 그는 『교향악단의 기초를 단단하게 다지는데 주력할
생각』이라고 청사진을 밝혔다.

『KBS교향악단의 성장도 개인적인 경력과 마찬가지』라는 그는 우선
전국순회연주회 등 국내 연주활동을 늘리고, 3년후 쯤에는 아시아순회연주,
5∼6년후에는 세계순회연주로 활동반경을 넓혀 「KBS를 세계적인
교향악단」으로 키워나가겠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그는 내년중 KBS교향악단과 정기연주회 5회, 콘서트를 겸한 청소년
TV프로그램2회, 환경을 위한 특별음악회 1회, 음악페스티벌 1회 등
9∼10회의 음악회를 구상중이다.

연주회 1회당 3만달러씩 연간 약 30만달러 상당의 개런티를 받게될 그는
『한국에서 실망스런 것은 늘 돈과 권력만 따지는 것』이라 꼬집으면서
『KBS교향악단에서 이익을 보고 싶지는 않다』고 못박았다.

『우리 나라와 일평생 계약했다고 생각한다』는 그는 KBS교향악단과
약속했던 일들이 안되면 언제든 떠나겠지만, 예정대로 잘 되면 계속
일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