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마타=이준기자】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52년, 일본 남부 작
은 어촌 미나마타 연안의 바다는 검붉게 변했다. 조개들은 입을 열고 썩
어들어갔고 해변으로 밀려온 물고기를 먹은 까마귀는 퍼덕대며 허공을
맴돌다 바닥에 떨어졌다. 고양이, 개, 돼지들이 미쳐 날뛰다가 불속이나
바다로 뛰어드는 '괴사건'이 잇따랐다. 1년뒤 연안에서 잡은 물고기와
조개를 먹은 주민들이 손발이 뒤틀리고, 혀가 마비되는 처참한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56년 5월1일. 바다로 공장폐수를 흘려보낸 칫소사 부속병원은 '원인
불명, 중추신경 질환자 30명 발생'이란 보고서를 작성했다. 미나마타병
의공식 발견이었다. 시 대책위원회가 '의사 일본뇌염'이란 오진을 내리
는 등 병명을 둘러싼 시비속에 59년 '오염원인이 수은으로 추정된다'는
첫보고서가 구마모토대학에서 나왔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수은 중독에 의한 미나마타병을 공식 인정한 것
은 첫발병으로부터 12년후인 68년이었다. 그 사이에 65년 니가타에서도
제2 미나마타병이 집단 발생했다. 니가타 주민들은 공장을 상대로 소송
을 제기했다. 일본에서 첫 공해소송이었다. 이는 67년 욧카이치 천식소
송, 68년 도야마 '이타이이타이병' 소송의 기폭제가 됐다. 정부가 미나
마타병을 인정한 68년 이후 소송건수는 급증했다. 칫소와 보상에 합의했
던 일 부 미나마타 주민들까지 합의를 번복, 법정싸움에 나서는 등 전국
9개 법원에서 소송이 동시 진행됐다. 73년 구마모토에서 첫 승소판결이
나왔으나 칫소사는 보상을 거부했다. 한 피해자가 "보상금 없이는 살 수
없다"며 동맥을 끊은 뒤에야 비로소 보상이 시작됐다.

미나마타 발병 40주년이던 지난해, 피해자와 칫소사간에 최종 타협이
이루어졌다. 공식 환자 인정을 받지못한 이른바 '미인정' 피해자 1만3천
여명에 대해서도 일시금 2백60만엔씩을 지급하는 대신 일체의 소송과 보
상을 마무리 짓는다는 것. '헐 값'이었지만 보상을 받을 사람들이 자꾸
만 나이 먹어죽어가는 상황이 낳은 피해자측의 양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