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네스협회는 지난 8월20일 '97년 한국 기네스북'에 새롭게 올
라갈 20명의 '한국 최고'들에게 인정서를 주었다. 이 중 특히 몇명의
기록은 일회성 기록이 아니라 수십년 세월, 나아가 전 인생을 바쳐 세
운 것이기에 관심을 끌었다. 만 44년간 일기를 써온 박래욱씨, 42년간
서울 거리를 쓸어온 백양기씨, 생업도 갖지 않고 32년간 복권 수집을
해온 황유근씨가 그들이다.

● 32년간 복권 2만7천여장 모아온 황유근씨.

국내 최다 복권 수집가인 황유근(59)씨. 그는 '살아 있는 복권 박
물관'이라 불린다.

그의 박물관 수장고에는 런던 올림픽 참가 기금 마련을 위해 1947
년 국내최초로 발행된 '올림픽 후원권'을 필두로 해서 1949년 대한민
국 사회부가 발행한 '후생복권', 56년 발행된 '애국복권' 등 이제는
명실상부하게 희귀본 반열에 오른 복권 수천장을 비롯, 현재 국내에서
발행되고 있는 10종 등 국내외 각종 복권 27만여장이 보관돼 있다.

그것도 앨범이나 스크랩 북이 아니라 대부분 작품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야생화 시리즈'나 '동물 시리즈' '민속 시리즈'처럼 복권 도안이
같은 것으로 꾸며 만든 14폭 병풍이 하나, 6폭 병풍이 2개, EXPO 복권
으로 만든 첨성대 장식, 주택복권 1회부터 1천회까지 연결해서 만든 25m
짜리 복권 시리즈, 올림픽 복권으로 만든 오륜 마크 장식….

그는 31세 때 운영하던 서점마저 걷어치우고 복권 수집에만 매달려
왔다.

그는 65년 서울 화신백화점 진열장 안에 있던 우표보다 조금 더 큰
국내 최초 복권인 '올림픽 후원권'을 보고 완전히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 전까지 약 10년간 우표 수집을 해왔던 그는 그 복권을 당시 쌀 한
가마니값보다 훨씬 많은 2만원을 주고 구입했다. 그때부터 복권 수집
에 나선 그는 69년 매주 정기적으로 발행되는 주택복권이 나오면서부
터 서점 문을 닫아버렸다. 대신 은행에서 복권 수백장을 할당받아 복
권 판매에 나섰다.

황씨가 복권 구입에 쓴 돈은 해가 갈수록 늘었다. 수집을 시작할
때는 주택복권 하나뿐이던 것이 이제는 추첨식 3가지와 즉석식 7가지
등 10가지로 늘었다. 그는 이 10종을 회마다 50∼1백장씩 구입한다.

한달평균 구입비는 40만∼50만원선. 그는 평생을 복권 수집에만 매달
려온 터라 다른 벌이가 없었다. 생활비 마련과 복권 구입 비용에 대해
묻자 그는 "아내가 일찍부터 일을 갖고 있었고, 경주 도심 요지에 있
던 땅뙈기도 얼마간 팔았다"는 정도만 밝혔다.

이런 황씨이지만 지난 32년간 구입해온 27만여장 중 최고 당첨 금
액은 1백만원이 고작이다. 즉석식 복권은 긁지 않고 보관하기에 더 큰
액수의 당첨 복권도 나올 법했지만 황씨는 "당첨이 아니라 수집이 목
적이기에 꾹 참았다"고 했다.

그래도 나름대로 터득한 당첨 비결도 있다. 첫째 매주 10장 정도는
구입하라. 둘째 이어진 번호를 사라. 셋째 한 회라도 빠지지 마라. 그
러나 부담스러울 정도는 절대 안된다. 술 한잔 값 절약해서 1주일간의
희망을 산다는 기분이어야 한다. 넷째 조 선택이 중요하다. 좋아하는
번호를 선택해서 매주 그 조만 구입하라. 다섯째 원형대로 보관하라.

낙첨복권 사은 행사도 있을 수 있다. 여섯째 욕심을 버려라. 당첨만을
바라면 심신을 망친다. 황씨는 "이 기준으로 복권을 사면 당첨금이 얼
마가 됐건 당첨 확률은 30%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황씨는 "복권은 우리 사회 변화상을 그대로 담고 있다"며 자기만의
독특한 '복권 사회학'을 풀어놓았다. 초창기 복권은 이재민 구호와 같
은 사회 구호 사업 목적이 강했고, 차츰 대규모 국가 행사 기금 마련
성격이 짙어졌다는 것이다. 전자의 예가 '후생복권'이고, '올림픽 복
권'과 'EXPO 복권' 등이 후자의 예라는 것이다.

당첨금의 변화는 우리 경제 발전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50년대
까지 1등 당첨금이 1백만원이던 복권은 주택복권 시대로 오면서 1천5
백만원까지 뛰었고, 83년 올림픽 복권에 와서는 1억원, 현재의 주택복
권은 1억5천만원까지 이르렀다. 주택복권을 3장 연번으로 구입할 경우,
최고 당첨 금액은 4억2천만원까지 가능해졌다. 황씨의 '복권 당첨금
계산법'에 따르면 우리 경제는 그동안 4백20배 정도 성장한 것이다.

황씨는 "다음 회 발행될 복권을 기다리며 '이번에는 어떤 모양으로
도안돼 나올까' 하는 즐거운 기대감이 병치레 한번 하지 않을 만큼 건
강을유지해왔다"고 말했다.

● 42년간 도시의 새벽 열어온 백양기씨.

'국내 최고참 환경미화원' 기록 보유자인 백양기(61·서울 강남구
수서동)씨는 정확히 41년 10개월 15일 동안 서울시 거리를 쓸었다.

고향인 전북 고창에서 무작정 서울로 올라온 백씨의 눈에 경찰국의
청소원 고용 광고가 들어온 것은 6·25 상흔이 채 가시기도 전인 지난
55년 8월.

"어려운 시절 그저 먹고 살기 위해 시작했다가 평생을 바쳤습니다.".

백씨는 먹을 것이 없어 이틀 동안 굶다가 청소원 시험에 합격한 후
식당으로 달려가 외상으로 먹은 밥 두 그릇이 지금도 어제일처럼 생생
하다고 했다.

그후 청소 업무가 경찰에서 시로, 다시 대행 업체로 이관되고 80년
대 들어 명칭도 '환경 미화원'으로 '격상'됐지만, 매일 새벽 4시면 어
김없이 시작되는 백씨의 빗질만은 55년 8월16일부터 정년 퇴직하던 지
난 6월30일까지 바뀌지 않았다. "다들 잠든 컴컴한 새벽에 혼자 일어
나 내가 사는 도시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보람은 해보지 않은 사람
은 모르는 묘한 매력이 있다"고 백씨는 자신의 '천직'을 회고했다.

그는 요즈음도 '청소 없이는 인생 전체가 무의미할 것 같아' 가끔
씩 빗자루를 들고 동네 어귀를 나선다고 했다.

● 박래욱씨, 44년치 일기 80여권.

광주시 북구 신안동 코리아나 호텔 옆에서 감초당 한약방을 경영하
는 박래욱씨(59). 12세 때인 53년 6월25일부터 지금까지 만 44년이 넘
게 일기를 써왔다.

그가 일기를 쓰게 된 동기는 어머니의 엄한 가정 교육에 있었다.

"하루하루 생활을 반성하는 일기를 써야 한다고 늘상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일기를 쓰지 않으면 회초리로 종아리를 여러 번 맞기도 했어요.".

박씨는 전남 장성군 진월초등학교에 다니던 9살 때부터 일기를 쓰
기 시작했다. 경찰관이던 부친이 지난 50년 7월18일(음력) 북한 인민
군에게 희생되고, 두 달 뒤인 9월4일(음력) 어머니마저 경찰 가족이라
는 이유로 학살당하는 불운을 겪었다. 집안을 공포로 몰아가던 인민군
들 실상을 보는 대로 느낀 대로 기록했던 일기장은 후환을 두려워한
어머니가 아궁이 속에 넣어버리기도 했다. 부모를 잃었던 당시 그에게
는 두살바기 동생만 있었다. 일기 쓰기를 다시 시작한 지난 53년 6월
기록에는 어린 동생을 품에 안고 재우고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젖을 얻
어 먹여 키우던 모진 고생담이 남아 있다.

그가 지금까지 기록한 일기장은 책 80여권으로 묶여져 보관되고 있
다. 일기책은 물론 가보 1호다. 70년대 말에는 집에 불이 나 애지중지
하던 일기장을 모두 태워버릴 뻔했고, 천장에서 샌 빗물에 일기장이
젖어 햇볕에 말리기를 되풀이하기도 했다. "요즘 인성 교육을 강조하
고 있는데 일기는 인성 교육을 하는 데 기여하는 바가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녀들에게 항상 "바르게 살아라, 열심히 살아라, 건강하게
살아라"고 강조한다고 한다.

그는 일기만 기록해온 것이 아니다. 수입·지출 기록도 40여년째
계속해오고 있다. 지난 70년 약방을 개업한 이래 한 사람도 빠지지 않
고 처방전을 기록, 보관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