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10시 50분.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긴박하게 울리자 서울시
청 공무원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일제히 인근 지하철 역사로 긴급 대피
하기 시작했다. 민원인들의 출입도 금지됐다. 시청 주변 대형건물들에
서는 급히 전기 공급을 중단하고 냉방장치와 엘리베이터 가동도 중지시
켰다. 지난 18일부터 시작된 을지훈련의 하나로, 평소와는 달리 예고없
이 공습경보부터 울리는 '불시 민방위 훈련'이 시작된 것이다.
같은 시각 서울시 민방위 총책임자인 조순시장은 시청과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둔 프레스센터 20층에서 '97 대통령 선거 출마에 따른 대국민
발표문'을 읽고 있었다. 밖에서 벌어지는 민방위훈련을 아는지 모르는
지 발표문 낭독은 계속됐다. 조시장은 "시장직을 사퇴하는 마지막 순간
까지 시정에 전념하겠다"고 강조했다. 낭독에 이어 그는 기자회견도 가
졌다.
그 사이 비록 가상이기는 하지만 적기의 폭격으로 다리와 도로가 끊
기는 등 서울시내는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민-관-군으로
구성된 통합수도방위협의회 의장으로 이 훈련의 최고 책임자중 한사람
인 조시장은 바깥 상황은 전혀 관심없다는 듯 자신의 대선 출마의 변을
밝히기에 바빴다.
대피훈련 시간 15분은 이렇게 지나가 버렸다.
조시장의 부하직원들이 만든 '97을지연습 복무자세'에는 '모든 시청
공무원들은 훈련기간중 근무지 이탈, 출장후 귀청하지 않는 행위, 개인
적인 일 처리를 위해 외출 또는 조퇴하는 사례를 금지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을지연습은 1년에 한번씩 실시되는 정부차원의 전시대비훈련이다. 현
대전은 총력전인 만큼 전시상황에서 서울시의 역할은 군못지 않게 중차
대하다. 서울시는 전쟁이 발발하면 예비군 등 인적-물적자원의 동원,
쌀 등 기초생활물품의 공급, 도로 교량 등 시설의 응급복구를 책임진다.
그래서 이때는 서울시청에 민-관-군 통합상황실이 설치되고 간부회의도
시청내 지하벙커에서 열린다. 공무원들이 철야비상근무를 하고 계엄령
상황에서만 볼 수 있는 무장군인들이 시청에 상주하는 것도 을지훈련때
문이다.
서울시의회도 조시장의 출마선언과 관련, 이날 임시회의를 긴급소집
해 대책을 논의하려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을지훈련이 실시되는 만큼
임시회의는 훈련이 끝난 후 개최한다"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