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김광일기자' 어느 나라에나 입시지옥은 있다. 그 나라의 동량
을 키워내는 대학들은 동서를 막론하고 예비후보인 '고3'들에게 이같은
숙명을강요한다.

영국에서 실업계 고교는 국립(state school)이고, 대학 진학을 목표
로 하는 인문계 학교는 사립(public school)이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
는다. 퍼블릭 스쿨은 토요일도 일요일도 없다. 만약 옥스포드, 캠브리지
등 일류대학을 목표로 한다면 과외(엑스트라 레슨)도 불사해야 한다.

런던에서 입시학원 '처칠 칼리지'를 운영하고 있는 한국인 김훈(42)
원장은 "고3생들이 대학 입학을 위해 치르는 고통은 전세계적으로 똑같
은 현상"이라고 말했다.

영국 퍼블릭 스쿨에서 고3을 부르는 이름은 '하이 식스 폼'이다. 하
이 식스 폼은 토요일도 등교하고 일요일에도 놀 틈이 없다. 유치원 때부
터 퍼블릭을 거치면서 대학입학을 목표로 삼은 이 학생들에게는 새삼스
러울 것도없다.

이들은 폭염이 시작되는 6월에 대학입학 시험인 '에이 레벨'(A level)
을 치른다. 국어 수학 물리 화학 경영 컴퓨터 미술 철학 사회학 경제학
일본어…등등. 10여 학과목 중에서 2∼4개 과목에 합격해야 대학 문을
두드릴 수 있다. 이중 일류 대학은 대개 4개 과목에서 합격할 것을 요구
하는 반면, 일반적으로는 2∼3개 과목만 합격하면 된다.

신문들은 고교들이 낸 대학입학 성적을 토대로 전국 순위를 매긴다.
퍼블릭 스쿨은 우수 학생들에 대해서는 장학금을 주면서 유치 경쟁을 벌
인다.

대학 입학률은 1위부터 시작되는 서열로 학교의 명예를 결정짓고, 장
래 그 고교의 입학생의 수준을 좌우할 수도 있다. '평준화'라는 개념을
이들에게 설명하기란 불가능한 셈이다.

작년엔 세계적 명문으로 알려진 이튼 스쿨이 전국 서열 60위 권으로
밀려나 뉴스가 되기도 했다.

대학 입시에서 두세 과목만 치르기 때문에 대학생들에게 편중된 지식
밖에 없다는 비판도 있다. 이공계 학생들은 세계사도 모르고 영국의 선거
제도도 모른다. 자기가 치러야할 시험과목만 깊게 파는 폐단이 있다는 것
이다. '1차 방정식을 모르는 법대생'이 그 적나라한 경우다.

영국에서 고교와 대학을 진학하는 한국 학생들은 수학과 물리를 선택
하는 경향이 많다. 한국 학생들이 그쪽이 상대적으로 강한 측면도 있고,
영어가 약한 것을 보완하려는 의미도 있다.

영국에서는 고2도 에이 레벨을 미리 칠 수 있다. 그래서 합격된 과목
은 2년 동안 유효하다. 고3때는 불합격 과목만 공략하면 된다. 이는 입시
지옥에서 한가닥 숨통을 틔우는 방법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