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년 야당 홍사덕의원 전격 기용 놓고 해석 분분 ##.

'정무1장관 홍사덕'.

지난 8월5일 단행된 김영삼 대통령의 '마지막 개각'에서 가장 주목을
끈 부분이었다. 무소속 의원이 정무장관에 발탁된 전례가 없을 뿐 아니
라 김 대통령과는 야당 시절에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던 홍 의원이 그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김 대통령은 한편으로 연말 대선의 공정 관리 의지를 이 인사를 통해
과시했지만 오랫동안 영입에 공을 들여왔던 야당 입장에선 아쉬움 때문
인지 냉소적인 반응을 숨기지 않고 있다. 심지어는 김대중 국민회의 총
재와의 돈독했던 과거의 연을 들어 일종의 '배신감'을 나타내는 관계자
들도 있었다.

11대 국회 때 민한당 공천으로 국회에 진출했던 홍 장관은 '양김'이
주도해 만든 신민당에서 이민우 총재의 측근으로, 또 당대변인으로 정치
적 자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정제된 표현과 핵심을 찌르는 용어를 구
사하는 '명대변인'이라는 상표는 이때부터 그를 따라 다니기 시작했다.

● 이대표 관계 겨냥·양김 매개론 등 다양.

그러나 '홍사덕 총재-이민우 대변인'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이민우
총재와 밀착, 한때는 내각제까지 추진하다 양 김씨의 눈 밖에 났다. 87
년 대선 때는 양김 후보 단일화 소신이 좌절되자 무소속으 로 남았다가
88년 13대 선거에서 서울 강남을에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그러나 92년
14대에 다시 도전, 당선됐는데 당시 안기부가 그를 낙선시키기 위해 흑
색 선전물을 살포한 게 되레 선거운동을 해준 격이 되기도 했다.

3당 합당 이후 치러진 92년 대선에서 홍 장관은 김대중 민주당 후보
의 대변인 역할을 맡았다. '김대중맨'으로 관계를 다시 다지던 시절이었
다. 그러나 정계 은퇴를 번복하고 다시 등장한 김대중씨가 95년 민주당
을 분당시켜 국민회의를 만들자 다시 무소속으로 남았다. 이 때 내세운
명분은 그의 소신이라고 밝히고 있는 '지역주의 정치와 3김 청산'이었다.

이처럼 야당 생활을 하면서도 '패거리'에 속하지 않고 독자적인 노
선을 견지하려 했던 홍 장관의 면모는 한편으로는 '독불장군' '이해타산
을 앞세우는 정치인'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양김씨로부터 꾸준한
손짓을 끌어내는 정치적 자산가이기도 했다. 작년 15대 총선에서도 무소
속으로 출마했던 그였지만 당시 여야는 그의 영입을 위해 군침을 삼켰다.

이런 그가 김 대통령 제의를 받아 정무장관직에 오르자 정가에서는 다양
한 분석이 제기됐다. 정치 생활 16년간 '야당'을 고집했던 홍 장관이
'여권' 캠프에 발을 들여놓음으로써 3김 시대 이후를 대비, 야심찬 변신
을 시도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차로 나왔다. 한편에서는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와 '특수 관계'인 그를 통해 김영삼 대통령이 '고단수 정치'를 구사
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김덕룡 의원이 최근 이회창 대표와 연대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과
관련, 이 대표와의 관계를 겨냥한 인사였다는 분석도 있다. 홍 장관은
신한국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김덕룡 의원을 밀었었다.

한때 '김대중의 입'이었던 그의 여권행은 의당 국민회의측의 빈축을
샀다.

국민회의의 한 관계자는 "결국 제 집을 찾아 간 것일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런 정서가 전부만은 아니다. 국민회의측은 아쉬움 속에서도 김
대중 총재와 홍 장관의 인연을 근거로 김 대통령과 김 총재간 모종의 역
할가능성에 주목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 김·김간 파이프라인역을 홍 장
관이 맡게 될 것이라는 얘기였다. 이같은 전망은 지난 8월5일 개각 후
김총재가 기자들과 만나 홍 장관의 입각에 대해 "야당과 대화가 필요할
때 쓰려는 것일 것"이라고 논평한 내용과도 닿아 있다.

● 당무회의 불참 선언, 당사 사무실도 폐쇄.

홍 장관 자신은 지난 8월6일 기자들에게 "공정한 대선 관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히기만 했다. 그러나 그의 정치 이력과 소신을 볼
때 단순히 여야간 메신저역에 만족할 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
다. 뭔가 '거리'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예상이다. 또한 그게 꼭 여당에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가 취임 소감을 밝
히면서 "이것 (자신의 정무장관 임명)은 하나의 정치적 실험"이라며 "새
로운 스타일을 선보이겠다, 창조적으로 해나가겠다"고 한 언급을 봐도
그런 추측은 더욱 그럴 듯해 보인다. 신임 인사차 여야 대표를 찾는 자
리에서도 홍 장관은 지금까지의 여당 의원 출신 정무장관과는 다른 면모
를 보일 것임을 강조했다.

홍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몇가지 그다운 조치를 내렸다. 그동안 정무
장관으로서 참석하도록 돼 있던 여당의 당직자회의나 당무회의에 참석하
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신한국당사에 있는 정무장관실도 폐쇄시켰
다.주로 국회의 정무장관실과 청사 집무실을 이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렇
게 하고서도 정무장관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왕년의
권투선수 알리가 훅은 없으면서도 스트레이트만으로 링을 평정했다"고
답하기도 했다.

물론 정치권에선 평시가 아닌 '전시'라는 점에서 홍 장관의 행보와
동선이 대선 정국에 가져다줄 변화가 간단하지 만은 않을 것으로 전망하
고 있다. 그가 연출해낼 역이 과연 어떤 궤적을 그려갈지 지켜봐야겠지
만 어쨌든 정치권 변두리에서 중심으로 진입한 홍 장관으로서는 의욕에
넘쳐 있는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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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 여덟번째
정무1장관은 주로 여당 국회의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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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홍사덕 장관은 김영삼 정부의 제8대 정무 1장관이다. 이 자리는
정부와 여당, 여야간 메신저이자 조정자라는 임무에 맞추어 현역 여당
국회의원이 맡는 것이 상식으로 돼 있다. 정무장관은 국무위원으로 국무
회의에는 당연히 참석하고 여당의 주요 간부회의도 참석하기 때문에 중
진 정치인이 적격이다. 무소속 의원이 맡게 된 것은 홍 장관이 처음이다.

노태우 정부 말기 김동익 전 중앙일보 사장이 비정치인으로서 이 자리에
기용된 적이 있지만 당시는 노 대통령이 여당을 탈당하고 선거 중립 내
각을 구성할 때여서 홍 장관과 비교할 수는 없다.

문민 정부 초대 정무장관은 여당의 실세 민주계 김덕룡 의원이었다.

93년말까지 재임했던 김 의원은 15대 총선이 끝난 직후인 96년 5월에 다
시 기용돼 6개월여간 재임했다. 김 의원에 이어 역시 민주계인 서청원
의원이 1년여간 재임했고 후임에 민정계의 좌장인 김윤환 의원이 기용돼
95년 7월까지 재임했다. 김 의원은 6공 때인 88년과 90년에도 정무장관
을 지낸 적이 있어 세번째인 셈. 그의 기용은 문민 정부 초기 개혁이 시
행착오와 기득권 세력의 반발로 잠시 주춤할 때였다.

뒤이어 역시 민정계인 김영구 의원이 6개월여간 재임했고 이어 주돈
식 전문체부 장관이 맡았다. 주 장관도 현역 정치인은 아니었으나 언론
인 출신에 청와대 정무수석을 거쳐 정치와 무관하지 않았다. 홍 장관의
전임인 신경식 의원은 언론인 출신의 3선 의원으로 작년 12월에 임명돼
약 7개월간 재임하다가 당직 보유 장관 교체라는 지난 8·5 개각의 원칙
에 따라 바통을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