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오전 괌 퍼시픽 스타호텔2층 대한항공 747기 희생자 분향소. 검
은 양복을 입은 이환균 건설교통부장관과 조양호 대한항공사장 일행이
들어섰다. 웅성대는 유족과 교민 사이를 헤치고 분향소에 들어간 이들
이 묵념을 하려하자 유족들 가운데 한명이 소리를 지르며 이들에게 달
려들었다.
"죽은 사람 살려내. 이제와서 무슨 조문이야, 당신들이 정부 대표
야." 사정을 알아차린 다른 유족들이 곧이어 여기저기서 고래고래 소
리를 지르며 가세했고, 이장관과 조사장 측근들과 밀고 당기는등 격렬
한 몸싸움을 벌였다.
곧이어 유족들의 흐느낌과 고함으로 아수라장이 되자 이장관 일행
은 줄행랑을 놓기 시작했다. 달리다시피 로비로 간 일행은 미리 대기
중이던 승용차를 타고 "나중에 보자"는 소리만 남긴 채 황급히 꽁무니
를 뺐다. 이장관이나 조사장 모두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기자회견이나 유족들과의 대화 등 일체의 일정을 취소한 채
였다.
이들이 달아나버리자 분노한 유족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서
서 정부의 미적지근한 태도와 대한항공측의 처사, 미당국에 대한 불만
을 쏟아냈다.
"죽지 않아야할 사람들이 죽은 겁니다. 돈만 생각하고 무리하게 운
항하니까 이런 일이 벌어진 거예요." "정부가 저렇게 하니까 미국이
한국 알기를 우습게 아는 겁니다. 지금까지 사망자 명단 하나 확인 안
해주고, 현장도 못보게 하는 건 우리를 깔봐서가 아니고 뭡니까.".
일부에서는 "우리 정부가 이번 사고에서도 미국에 저자세로 일관하
고 있다"면서 정부의 무능함을 질타했다. 유족대표중 홍보담당인 김희
태(34·한양대 의대교수)씨는 기자들에게 "우리의 불만이 뭔지를 정확
히 전달해 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격앙된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분향소에서 몸빼기
에 급급했던 이장관과 조사장일행은 호텔로비에서 한숨을 돌리면서 엉
뚱한 대화를 나눴다. "대한항공측이 사고 4일만에 나타나면서 우리에
게 묻어 오니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 아니냐, 좀 더 일찍 나타났어
야 했던 것 아니냐." "이럴 것 같아서 미리 현장정리 좀 해놓으라고
했던 건데 잘 안됐다.".
본질에서 한참 벗어난 이야기만 주고 받는 모습을 보면서 "차라리
유족들에게 멱살이라도 잡혀 줬더라면…"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괌=최원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