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상사는 분명 풍수지리설로 만들어진 절입니다. 그러나 당시의 사
상사적 배경을 알아야 실상사가 제대로 보입니다.".

산바람이 시원한 절집에서 만난 도법 주지스님은 풍수지리와 관련된
재미만 찾는 태도를 질타했다. 통일신라 말기의 사회상, 그리고 이를
바로 잡으려는 신라왕조의 발원까지 이해해야 실상사의 '실상'이 드러
난다는 말이다.

실상사는 이른바 구산선문의 첫 사찰. '왕은 곧 부처'라는 국가종교
적 이데올로기로 유지되던 통일신라는 말기로 접어들면서 사상사적 혼
란에 빠진다. 당시의 지배논리는 교종. 교리와 경전의 해석을 중시하는
교조적인 입장이 대세였다. 이에 대해 새로운 사상으로 등장한 선종은
'누구든 깨우치면 부처가 될 수 있다' '교리보다는 깨우침'이란 메시지
로 당시 힘을 키우던 지방 호족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는다.

중국에서 선종을 최초로 배워온 도의선사는 무르익지 않은 시기를
한탄하며 설악산 진전사로 숨어들었다. 그러나 5년 뒤 귀국한 홍척선사
는 왕실에 초청돼 선종을 강법하고 왕실의 도움으로 지리산 실상사를
창건한다.

"창건 일화에서 알 수 있듯 실상사 터는 신라왕실이 아껴오던 명당
이 분명합니다." 왕실 아니면 손도 못대던 연꽃 모양의 명당에 절이 지
어졌으며, 동시에 일본의 침략을 경계한다는 풍수사상이 반영됐다는 설
명이다.

'일본 열도를 때린다'는 범종에 대해서도 스님은 일침을 놓는다.
"종에는 원래 한반도도 그려져 있었어요. 한반도와 일본열도를 한꺼번
에 때리면서 한국인에겐 '정신 차리라'는 경각심을, 그리고 일본 사람
에겐 '경거망동 말라'는 교훈을 주는 것이 원래 뜻입니다." 말뿐인 '일
본때리기'로 감정을 배설하는 대일본 풍조에 대한 따끔한 경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