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릉…, 후두둑 후두둑'.
7월30일 오후 2시 덕수궁앞. 보름 넘게 비 한방울 없이 타오르던 도
심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끼었다. 그리곤 천둥과 함께 이내 굵은 소
낙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미처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행인들은 비를
피해 제각기 내달렸다. 그래도 워낙 기다리던 비인 탓인지 표정들은 밝
았다.
하지만 길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붓글씨를 써서 파는 조규현(37)씨는
완전히 혼비백산했다. 대한문 부근에서 영국대사관 입구까지 덕수궁 돌
담에 기대 전시한 수십점의 서예작품과 액자가 몽땅 망가질 처지에 놓
였기 때문.
더구나 그는 어려서 사고로 오른팔을 잃은 장애인. 황망히 '사고수
습'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한 팔만으론 한번에 액자 두개 들어나르
기도 어려워 발만 동동 구르다시피했다. 벌써 빗줄기는 제법 굵어졌다.
그 때 어디선가 경관 두명이 나타나 잽싼 손길로 액자를 한아름씩
걷어주기 시작했다. 순찰 나왔다가 돌아가던 남대문경찰서 태평로파출
소의 박정남 경사와 이영원 의경. 순식간에 액자들은 지하철역 입구 계
단참에 가지런히 쌓였다.
조씨는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건네지 못한 채 잠시 두 경관을 멀거
니 바라봤다. 그들은 씩 한번 웃더니 다시 파출소 쪽을 향해 빗속을 내
달렸다. 건장한 두 어깨가 이미 흠뻑 비에 젖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