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남색 치마 반회장 저고리로 외롭게 살다 간 사슴의 시인'으로 불리
는 노천명 시인의 전집이 이번주 솔출판사에서 나온다. 올해로 시인의
타계 40주기를 맞아 출간되는 이 전집은 시를 모은 '사슴'과 산문을 모
은 '나비' 두권으로 구성됐다. 기존 작품 외에 새로 발굴한 시 9편과
산문 7편을 수록, 유실될 뻔한 노천명문학의 일부를 되살려냈다. 기존
시집에 없는 새 작품은 지난 31년 이화여전 영문과 재학시절 시인이 교
지 '이화' 3호에 발표한 '고성허에서'를 비롯, '봄잔디 위에서' '촉석
루에 올라' '내 청춘의 배는' '정의 소식' '산사의 밤' '병정' '가난한
사람들' '여원부' 등. 국립중앙도서관과 이화여대 도서관에서 찾아냈다.

김윤식교수(서울대) 김현자교수(이화여대) 김옥순 국립국어연구원
연구원 등이 편집위원을 맡아 지난해 봄부터 1년여의 작업 끝에 결실을
맺은 이 전집 중 '사슴'은 시집 '산호림'(38년) '창변'(45년) '별을 쳐
다보며'(53년) '사슴의 노래'(58년)에 실린 작품들을 발표 순서로 싣고
본문은 현대어 표기법에 맞게 고쳤다. 그러나 각주를 통해 초판본의 원
문을 싣고, 일부 시의 황해도 방언을 풀이했다.

산문전집의 경우 기존에 출간됐던 '산딸기'(48년) '나의 생활백서'
(54년)를 주텍스트로 삼았고, 그밖에 흩어졌던 산문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노천명은 식민지시대 신여성의 상징적 관문인 이화여전 시절부터 시
적 재능을 발휘, 30년대 모더니스트 시대에 여성시의 대표주자로 꼽혔
다. 영탄조의 여성시 전통을 넘어서 신여성의 냉철한 자기 인식을 탐
구했던 탓에 그녀는 '조선중앙일보' 학예부 기자 시절 별명이 '찬바람
불다'였다. '전시대 같았으면 환영을 받았을 삼단같은 머리는 클럼지한
손에 예술품 답지 않게 얹혀져 갸날픈 몸에 무게를 준다'(시 '자화상'
부분)처럼 그녀는 전통과 현대 사이 끼인 여성의 자아 성찰을 본격적으
로 시도한 시인이었다.

또한 그는 고향인 황해도의 토속어를 감칠맛나게 구사하면서 당시
유명 시인 백석 못지 않게 북방 정서를 형상화했다. 그의 대표작 '사슴'
은 단순한 애상의 표현이 아니라, 사슴이란 동물의 전통적 이미지에 보
다 높은 이상을 향한 시인의 내면 초상을 투사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일제 말기부터 시인의 일생은 불행의 연속이었다. 시대 상황
에 밀려 친일경향의 시를 발표할 수밖에 없었고, 6·25 때는 인공치하
서울에 잔류한 탓에 부역혐의자로 몰려 감옥까지 가야 했다. 독신으로
지내던 시인은 57년 3월 거리에서 갑자기 쓰러졌다가 세달뒤 재생불능
성 빈혈로 47세의 나이에 쓸쓸히 세상을 떴다.

이 전집을 펴낸 솔출판사 대표이자 문학평론가인 임우기씨는 "노천
명 시인은 우국지사와 같은 삶을 살지도 못했다"면서 "그녀의 문학 그
런 상처와 고독을 자신의 불행한 운명으로 받아들인 한국 현대문학의
슬픈상징이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