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백
년 동안의 고독'이 올해로 출간 30주년을 맞았다.

'백년 동안의 고독'은 라틴아메리카 소설 특유의 '마술적 리얼리즘'
선풍을 지구촌 문단에 일으켰고, 세기말을 앞둔 현재 20세기 소설의 고
전으로 추앙받는 작품이다. 프랑스 시사주간지 '누벨 옵세르바퇴르'에
따르면 '백년 동안의 고독'은 67년 초판이 출간된 이래 20여개국 언어
로 번역돼 2천만부나 팔린 대기록을 세웠다.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광과
함께 언어와 인종의 경계를 넘어서 이처럼 상업적 성공까지 거둔 것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이후 극히 드문 사례다.

국내에는 77년 번역문학가 겸 소설가인 안정효씨가 영역본을 우리말
로 옮겨 처음 소개한 이래 현재까지 5만부 정도 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원작자와 정식으로 저작권 계약을 맺은 민음사는 스페인 문학을 전공한
소설가 황병하씨에게 원전 번역을 의뢰, 올 연말쯤 출간할 예정이다.

콜롬비아의 저널리스트 출신인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남미 독자들 사
이에서 '가보'라는 애칭으로 통한다. 가보는 올해로 70세가 됐고, 문단
데뷔 50주년을 맞았다. 그는 반세기나 되는 작가 생활의 대부분을 정치
적 이유로 조국을 떠나 유럽과 멕시코, 쿠바 등지로 떠돌아 다녔다. 소
설 '백년 동안의 고독'은 그를 망명 작가로 내몬 남미의 정치-사회사를
반영한다. 그래서 그는 노벨문학상 시상식장에서 수상연설문 '남미의
고독'을 통해 스페인의 식민지 지배, 제국주의 열강의 침탈, 그리고 독
립후에는 미국의 후원을 받는 독재자들의 철권 통치를 겪어야 했던 남
미 민중의 '고독'을 전세계에 호소했다.

그러나 '백년 동안의 고독'은 그같은 역사적 상황을 직설적으로 고
발한 리얼리즘 소설이 아니다. 그 작품이 남미라는 지역을 넘어서 전세
계적 공감대를 형성한 것은 현실과 신화, 상징을 넘나드는 마술적 리얼
리즘의 기법으로 소설 양식의 새 지평을 개척했기 때문이다.

소설의 무대는 남미 열대림 속의 가상 도시 '마콘도'. 고향을 떠나
이곳에 정착한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 가문의 6대에 걸친 가족사가
전개된다.

부엔디아의 꿈 속에서 '거대한 유리벽 집들이 찬란하게 빛나는 도시'
로 계시되는 마콘도는 인간의 영원한 유토피아를 가리킨다. 소설 속에
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집시 멜키아데스는 예언자의 상징이다. 그
가 친구 부엔디아에게 남기는 양피지에는 마콘도를 지배할 예언이 적혀
있다. 그 예언은 소설의 끝에 가서야 부엔디아의 6대 후손에 의해 해독
되는데, 부엔디아 가문에 드리워진 근친상간의 운명을 가리킨다.

소설의 첫 부분에선 이미 그 가문에 근친상간으로 인해 돼지꼬리 달
린 아이가 태어난 적이 있다는 얘기가 슬쩍 언급된다. 이 돼지꼬리는
소설의 주요 모티브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소설의 서술 방식도
돼지꼬리를 닮았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중첩되는 서사 양식은 마치
돼지꼬리처럼 나선형의 시간관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직선적 시간이
아니라 나선형으로 도는 신화적 시간 순환이 '백년 동안의 고독'을 환
상적 소설로 만든다. 마콘도 전체에 불면증이 역병처럼 번지고 잠을 못
잔 사람들은 하나 둘씩 기억력을 잃어버리는데, 인간은 모든 사물에 이
름을 써서 붙여 둠으로써 그것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이 대목은 바로
신화 시대의 아득한 기억을 잃어버리고 남아 있는 기록을 통해 막연하
나마 그 근원을 망각하지 않고 있는 인류 역사의 은유적 표현이다.

마콘도는 환상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남미 현대사의 상징적 무대다.
미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외국인들의 바나나농장 경영을 통한 착취, 이
에 저항하는 민중의 반란, 그리고 끝없는 내전의 반복 등이 벌어진다.
그 역사적 상황마저 환상적으로 처리되는 것은 독재 권력 아래에서 은
폐된 학살과 부패의 진상은 전설처럼 전해 오다가 갑자기 현실 위로 분
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와중에서 부엔디아의 아들 아라카디오, 아
우렐리아노, 딸 아마란타 그리고 그들이 낳는 자식들의 자식들로 이어
지는 가족사는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소설은 더 한층 환상의 영역으로 옮겨가 4년여 동안 계속 비
가 내린다는 이야기를 들려 주면서 마콘도에 들어선 모든 외세와 문명
의 폐해를 씻어내리는 '노아의 대홍수'식 설화를 전개한다. 대홍수가
끝난뒤 생존자들이 마콘도를 재건하지만 가문 내에서 근친상간이 재현
돼 돼지꼬리 달린 아이가 또다시 태어난다. 그 저주받은 운명이 주인공
가문에 부여된 '백년 동안의 고독'의 정체다. 소설 끝 부분에서 집시
멜키아데스의 예언이 해독되는 순간 부엔디아가 꿈 속에서 봤던 '유리
도시마콘도'가 바람에 휩쓸려 인간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것
으로 묘사된다. 작가는 마콘도로 상징되는 인간의 유토피아는 인간 내
부의 악으로 인해 실현되지 못한다는 비극적 결말을 제시함으로써 인류
의 각성을 촉구한다.

'백년 동안의 고독'은 비극적 끝처리에도 불구하고 시적 상징의 아
름다움, 남미의 토속적 유머 감각, 등장인물들의 생명력으로 인해 유쾌
하게 읽힌다. 작가는 인류의 고독(solitude)을 지적하면서 그의 노벨상
수상연설문 '남미의 고독'에서 강조했듯이 이 소설에 감동을 받은 전세
계의 독자들이 인간의 연대(solidarity)를 통해 우리 모두의 고독을 치
유하길 바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