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11월 52세된 일본 아버지가 중학교 3학년인 아들을 살해했다.
잠자는 아들을 알루미늄 야구 방망이로 때려 죽였다. 사건이었다. 일본
언론들도 난리를 피웠다. 처음엔 '이럴 수가'란 생각이 강렬했다. 사건
내용을 알곤 '그럴 수도'라고 생각됐다. 그러나 다시 조금 뒤 '왜'란 생
각이 들었던, 그런 사건이었다.
아버지는 명문 대학 출신, 대기업 간부였다. 죽인 이유는 아들이 부
모에게 줄곧 폭행을 가해왔기 때문이었다. 아들은 틈만 나면 폭력을 휘
둘렀고, 어머니는 2년간 계속된 아들의 폭력에 견디다 못해 집을 나갔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아들을 이해하려 했다. 음악 좋아하는 아들을 생각해
함께 전자기타 학원에 다녔다. 정신과 의사와 상담도 했다. 그러나 이것
저것 다해봐야변한 것이 없었다. 그 결론이 아들 살해였던 것이다. 그
아버지는 요즘 구치소에서 '자녀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부모의 사랑'이
란 내용이 적힌 책을 보며 눈물 흘리고 있다.
사건을 보면 '한 대 쥐어박고, 고함지르지…'란 생각이 든다. 그 생
각을 일본인에게 전해봤다. "한국이 부럽습니다. 그러나 10년쯤 뒤면 한
국도 같아지지 않을까요"란 답이 돌아왔다. 유교문화가 약한 일본에서
'군사부 일체'란 생각하기 힘들다. 일본 사람은 "중학교 2∼3년이 경계
선일것"이란 시각을 제시했다. 몸집이 커지는 중학교 2학년 정도만 되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완력적'으로 평등해지며, 아버지가 무리하게
요구하면 아들은 반말해대며 몸을 밀치고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내가
바로 그랬다"고 그 일본인은 말했다. 아버지의 아들살해 사건. 극단적인
예다. 그러나 최소한 일본 아버지들이 몹시도 외롭고, 마지막 의지할 고
향인 가정마저 상실하고 있음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 회사를 가정처럼 여기고 살아온 대가
50년대 후반 일본에선 '아빠는 모든 것을 알고계신다' '우리 엄마는
세계최고'란 미국 TV 드라마가 인기였다. 일본의 총각 처녀들은 그 드라
마에 빠졌고, '나도 언젠가 결혼하면…'이란 신앙을 가졌다. 이어 급속
한 경제성장이 시작됐고,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신앙은 실현될 것으로
비쳐졌다. 그래서 아버지는 '기업 전사'가, 어머니는 '간호 장교'가됐다.
TV 드라마 속의 가정이 보장될 것으로 생각했고, 그렇지 않을리는 없다
고들 생각했다. 그러나 TV 드라마는 드라마로 끝났다. 생활은 풍족해졌
지만, 50년대 그리던 아버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실현된 것은 회사인간,
수험전쟁, 가정부재, 어머니 의존적 자녀뿐이었다. 그나마 기업들은 요
즘들어 "평생 회사에 충성하지 않아도 된다"며 나가라고 한다. 일주일에
휴일은 이틀로 늘었다. 그러나 가정과 자녀는 장기간 가출했다 돌아온
아버지를 몰라본다.
이런 일화가 있다. 아버지가 딸에게 "가족끼리 주말여행 떠나자"고
말했다. 딸의 답변은 "남자 친구와 약속있다"였다. 그 딸은 덧붙였다.
"어릴때 제 수업 참관일에 한 번이라도 오신 적이 있나요. 가족끼리 단
란히 대화 한번 한 적 있던가요. 그런 아버지가 이제 와서 왜 이러십니
까." 일본 아버지들이 30년간 회사를 '가정'으로, 회사동료를 '가족'으
로 여기며 '두집살림'을 해온 결말이다. 첩이던 회사마저 일본 아버지를
내버리려 한다. 회사란 몹쓸 여인에게 버림받은 일본 중년 아버지의 표
준적 모습은 다음과 같다.
일본 대기업의 중년사원에게 통지서가 왔다. 펴보니 '오늘부터 학원
다니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10대 청소년과 한 교실에서 경리 기초를 배웠다. 교
실에는 회사동료 아버지 16명도 있었다. 한달쯤 뒤 능력향상을 위한 사
외교육이 아닌, '그만두라'는 통고였음을 몸으로 깨달았다. 아버지는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인사부에 물었다. 반응은 차가웠다. 아직 자존
심이 남아있던 아버지는 사표를 냈다. 이 아버지에게 제시됐던 학원 공
부는 퇴직 명령의 다른 형태다. 퇴직 명령은 종종 자영업 홍보, 전직 권
유, 경영난에 따른 급여 삭감의 모습으로도 다가온다.
회사인간으로 자랐던 일본 아버지들. 회사에 인생을 맡겼고, 회사란
온실이 없으면 존재못한다. 나이와 직급이 높아 노조도 보호하지 않는다.
55세가 되면 나이들었다는 죄 때문에 월급이 40∼50% 줄어든다. 퇴명령
을 받으면 자존심이 상하므로 이상한 소문이 떠돌면 바로 '의원 해임'을
택한다. 그러나 사표낸 뒤 갈 곳이 없다. 이력서에 쓸 수 있는 '특기'는
없고, 모회사 '과장' '부장' 출신이란 직책만 쓸 수 있다.
● 가족 관련 책·학원 인기
'아버지가 사라진 시대' '역할 상실한 아버지 양산 시대'. 그런 일본
이기 때문에 '부성 복권'이란 책이 요즘 롱셀러를 기록중이다. 저자하야
시 미치요시(임도의) 도쿄여자대학 교수가 책에서 묘사한 일본 가정은
가족간 일체감이 없는 '호텔가족'. 이 책이 그간 쏟아졌던 '아버지' 관
련책과 다른 것은 '어떤 아버지가 바람직한가'란 대중요법적 수준에서,
'아버지란 무엇인가'란 근원적 물음을 던지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책
에서 아버지의 조건들을 제시했다. 확고한 원칙을 통한 '가족통합', 평
화봉사 성실 등의 '이념제시', 가족 전체를 이끄는 '전체적·객관적 시
점'및 '지도력',마지막으로 가족에 대한 '사랑'이 아버지로 갖춰야할 자
질이라고 분석했다. 책은 15만권 팔렸고, 요즘도 매달 중판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외롭고 힘빠진 일본 아버지들에겐 너무도 원대한 방향제시
다.
일본 아버지들. 요즘은 학원다니며, 30년쯤 전 그만뒀던 공부를 다
시 시작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도쿄에 있는 그 학원이름은 '부모업훈련
협회'. '부자 커뮤니케이션'이란 강좌를 통해 부모와 자녀간 원만한 대
화법을 가르친다. 원생은 7만5천명. 학원생끼리 만나선 "이렇게 하니 가
정과 자녀가 좋아하더라"며 성공담을 얘기한다.
일본경제신문이 조사했다. '당신은 2020년 어디서 인생의 보람을 찾
겠습니까'. 70%가 '가족'이라고 대답했다. 50%가 '가정에서 가장 큰 편
안함을 느낀다'고 밝혔다. 그 보람과 안락을, 그러나 일본 아버지들은
여전히 찾아헤매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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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9.8% "매일 쫓긴다"
아버지 여론조사, 절반이 "시간 남으면 잠 좀".
틈나면 여론 조사하는 일본에선, 아버지 관련 통계도 다양하다. 내용
은 가슴 쓰리다.
오리엔트 시계가 조사한 아버지의 시간 관념. '시간에 쫓긴다고 생각
한 적이 있느냐'. 이 질문에 아버지 89.8%가 "매일 쫓긴다"고 대답했다.
'언제쫓긴다고 생각하느냐'엔 "일할 때"가 77.3%였다. '하루가 25시간이
라면'이라고 묻자 아버지 2명 중 1명이 "남는 1시간은 잠 좀 자고싶다"
고 말했다.
아버지들이 길게 느끼는 시간은 통근,일,회의 순으로 집계됐다.
역으로 다 큰 딸들은 아버지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무려 80%가 "아
버지들은 힘에 넘친다"고 대답했다. 아버지가 힘에 넘치는 이유로는 "목
소리가 크기 때문"이라고 과반수가 답했다. 2명 중 1명이 "아버지보다는
내가 지쳐있다"고 말했다.
좀더 어린 자녀들은 아버지를 어떻게 여기는가. '거동이 불편해졌을
때 양로원에 보내겠다'고 24.1%가 대답했다. '아버지와 함께 저녁 먹는
경우'가 33%에 불과하기 때문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자녀 60% 이상이
"아버지는 일 때문에 집에 늦게 온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피곤
한 아버지. 그러나 '나와 놀아준다'고 48%가 인정했다. '어른이 되면 행
복한 가정을 꾸릴수 있다'고 대답한 일본 자녀는 35%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