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고바우 냉면집' 1층.
지난 12일 목선 한척에 모든 것을 걸고 자유의 땅을 밟았던 김원형
씨의 부인 김의준(53·여)씨의 남한 친척 10여명이 김씨를 기다리고 있었
다.
고모 진수(79), 사촌 언니 봉숙(62)씨 등과 함께 나온 김씨의 작은
오빠 태준(62)씨는 상기된 표정으로 6·25때 생이별한 동생을 알아볼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30분후, 첫눈에 서로를 알아본 오누이와
가족들은 온통 눈물범벅이 됐다.
"기쁜지 슬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한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의준씨는 북에서의 고초가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듯 가족들의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는 지난 46년간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8식구 모두 피
난길에 나섰던 이들이 생이별하게 된 것은 1·4후퇴때. 대동강에서
미처 나룻배에 오르지 못한 어머니와 의준씨, 막내 용희(당시 2살)가 북
녘땅에 남았다.
1백만평이 넘는 땅을 가졌던 지주 출신에 월남자까지 있던 이들 가
족을 북한당국은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고 의준씨는 말했다.
"그 순한 양반이 갖은 고초를 겪어 병까지 얻고…. 그래도 항상
헤어진 자식들을 만나지 않고는 절대 죽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죠.".
막내 용희는 폐렴에 걸렸는데 당에서 약조차 주지않아 발만 동동구
르다 잃고 말았다.
의준씨는 "어머니는 아이가 죽은 것도 모른 채 하루를 등에 업고
다녔다"며 "동생의 눈에 파리가 엉겨붙어 있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
다"고 말했다.
어머니 김덕저씨는 지난 87년 북녘 땅에서 한 많은 일생을 마감했
다고 의준씨는 전했다. 동생이 북에서 가져온 3장의 사진을 바라보던
태준씨는 모친의 소식을 듣고 눈물을 쏟았다.
"자식들을 데리고 이리 고생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남한에서 당
당히 잘살아 보겠다"는 의준씨에게 사촌언니 봉숙씨는 연신 "고맙다, 고
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