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의 시선집 '거대한 뿌리'가 민음사에서 나온 것은 74년.

유신체제 아래서 문학의 현실참여 열기가 드높던 때였다.

김수영이 교통사고로 숨진 68년 이후 6년 동안 문학계내부의 토론
을 거쳐 대표작으로 공인받은 시들을 한자리에 모은 것이었다. 4월 혁명
을 전후로 시민적 비판정신을 강조했던 그의 주요 작품은 70년대 시대상
황과 맞물려 젊은 문인과 시인 지망생의 영혼을 들뜨게 했다.

'거대한 뿌리'에 수록된 시들은 주로 4·19라는 역사적 사건을 겪
은 시인의 개인적 일상을 담고 있다. 4월의 그날 시인은 혁명의 환희에
들떠 있었다.

현대문학편집장을 지낸 동생 김수명씨는 "오빠가 마포 구수동에서
도봉동까지 먼거리를 뭔가 새로운 것을 본 것처럼 흥분해서 한걸음에 달
려온 것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시쓰기에도 변화가 있어 "호흡이 터진다. 호흡이 거칠게 없다"는
말을 지인들에게 했다고 수명씨는 얘기했다. 표현방법도 참여적이며,
직설적인 것으로 변했다. 후에 그는 "경험이 낮을 때는 시를 찾으려고
몸부림을 치는 수가 있지만, 어느 정도 지혜를 갖게되면 기다리는 자세로
성숙해 간다"고 말하고 있다.

시가 몸안에 차서 넘치면 자연스럽게 뱉어내듯 시를 쓴 것이다. 그
렇지만 5·16이후의 변화에 대해서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혁명은 안되고 방만 바꿔버렸다"는 표현이야말로 그의 생각을 가
장잘 표현했다고 그를 아는 문인들은 얘기했다.

담뱃갑에 시를 메모하는 별난 버릇이 있는 그는 시를 다 쓰고나면
가족들에게 원고지에 옮겨 쓰도록 하는 독특한 습관도 갖고 있었다. 그는
양계장으로 생활을 꾸려가기도 했으며, 뛰어난 영어 실력으로 번역을 하
기도 했다.

'거대한 뿌리'는 지금까지 24쇄를 거듭했으며 90년대 들어서도 매
년 2천부씩 꾸준히 나가고 있다. 그의 시정신은 81년 제정된 김수영
문학상을 통해 젊은 시인들에게 이어지고 있다.

정희성 이성복 황지우 김광규 김용택 유하 등 문단의 한축을 이루
고 있는 시인들이 수상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