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6장 받아치기⑨
"저어 사장님…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언니라고 불러라. 중생은 니 형제자매니라.".
나이 차이가 이십년에 가까워 언제나 호칭을 얼버무려 오다가 겨우
찾아낸 사장님이란 호칭을 보살마담은 도통한 스님처럼 그렇게 바꿔주
었다.
"그럼 저… 어, 언니. 저 돈 백만원만 빌려주세요. 잡힐 것도 없고
기한도 정하지 못하지만… 꼭 갚고 이자도 힘껏 쳐드리겠어요.".
영희는 말을 낸 김이라 한꺼번에 차용조건과 변제방식까지 털어놓
았다. 보살마담은 특별히 놀라거나 어이없다는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
다.
"백만원이라… 그거 적은 돈이 아닌데. 아무리 요새돈이라지만 강
남으로 좀 빠지면 그런대로 살만한 집 한채 값이야. 그 큰 돈을 담보
도 기한도 없이 빌린다….".
그렇게 보살마담은 꼭 남의 얘기를 하는 사람 같았다.
"그러니까 보살언니를 찾아온 거예요. 언니라면….".
갑자기 불안해진 영희가 다급하게 말을 받아놓고는 그렇게 말끝을
흐렸다. 원래는 준비한 말이 많이 있었으나 왠지 자꾸 말문이 막혔다.
보살마담이 여전히 남의 얘기를 하는 사람처럼 흐려진 영희의 말끝을
붙들었다.
"언니라면… 무어냐? 어째서 내게 오면 된다고 믿게됐지?".
영희에게는 감동적인 말로 그녀를 설득시킬 기회가 주어진 셈이었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려고 하며, 그 일이 자신의 인생에서 뜻하는 바가
무엇이며, 얼마나 성공의 확률이 높은가에 대해서. 그런데 어찌된 셈인
지 기회가 주어지자 더욱 말하기 힘들어졌다. 갑자기 자신의 계획이 황
당하기 그지없고 그걸 바탕으로 그렇게 큰돈을 빌리려는 것이 터무니없
는 것으로 느껴졌다.
"모르겠어요. 어쨌든… 보살 언니라면 어떻게 해줄 것 같았어요.".
한참이나 망설이던 영희가 갑자기 될대로 되라는 기분이 되어 그렇게
대답하고 말았다. 그러자 보살마담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
"그렇다면 잘못 찾아온 것 같은데. 지금 내게 그만한 돈이 없거니와
있다고 해도 그런 애매한 돈을 빌려줄 순 없겠어.".
영희는 거기서 모든 것이 끝난줄 알았다. 그런데 지레짐작으로 맥이
빠져 대꾸없이 앉은 영희를 한동안 물끄러미 살피던 보살마담의 다음 물
음이 다시 일을 풀어나갔다.
"도대체 용처가 어디야? 뭘 하려는데?".
영희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제서야 자신의 계획을 털어놓았다. 이제는
돈을 빌리는 일보다 산전수전 다 겪은 인생의 선배에게서 자신이 설계한
남은 삶을 검토받는다는 기분이 앞섰다.
다소간 마음이 풀려서인지 영희의 얘기는 미리 준비했던 것보다 더
진지하고 세밀해졌다. 거기다가 충분한 감정이입까지 일어나 얘기를 마
쳤을 때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두 볼에 줄줄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내 한번 마련해 보지. 일주일이면 되겠어?".
이윽고 꿈결에서처럼 보살마담의 입에서 그런 말이 흘러나왔다. 그러
나 영희와는 달리 표정은 여전히 냉랭하기만 했다.
양재동 배밭을 내놓은 부동산에서 급한 전갈이 온 것은 그로부터 사
흘 뒤였다. 그날 무슨 일인가로 밖에 나갔던 영희가 셋방으로 돌아오니
기다리고 있던 억만이 급한 표정으로 말했다.
"복덕방에서 안집으로 전화가 두번이나 왔어. 그 땅 살 사람이 있다
는거야."
"그럼 얼른 가봐요. 쇠뿔은 단김에 빼랬다구, 이런 일은 꾸물거려 좋
을게 하나두 없어요.".
영희가 그렇게 받으며 서둘러 나갈 채비를 하자 억만이 갑자기 자신
없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런데 말이야, 저쪽이 여간 깐깐하지 않은가봐. 어쨌든 아버님의
의사가 확실한걸 증명해야 된대. 아버님 모시고 오라면 어떡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