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청년학생축전은 한마디로 사회주의권의 '문화올림픽'이다.

지난 47년 체코의 프라하에서 70여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창립행사를
가진뒤 2∼5년 주기로 주로 동구권에서 열려 왔다. 그러나 제7차(59년),
8차(62년) 축전은 사회주의 국가가 아닌 오스트리아, 핀란드에서 열리
기도했다. 85년 12차 축전은 러시아의 모스크바에서 열려 1백57개국
4만명이 참가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동구권 밖에서는 78년 쿠바에서 11차 대회가 한 차례 열렸고 아시아
권에서는 13차(89년) 평양 대회가 처음이었다. 1차 축전은 사회주의 전
위조직인 세계민주청년동맹(WFDY·본부 부다페스트)이 주관했으며 2차
부터는 프라하에 본부를 둔 국제학생동맹(IUS)이 공동 주관해 왔다.

1백9개국 2백20개 단체 소속 회원들로 조직된 WFDY는 청년간의 이해,
협력 강화, 세계 평화를 지향하고 있으며 84개국에 지부를 두고 있는
IUS는 스포츠 문화 교류를 통한 유대 강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축전의 내용도 반제, 반전평화를 주제로 한 정치토론과 예술행사
친선체육대회 등 복합 행사의 성격을 띠며, 참가자도 학생 노동자 농민
군인 예술인 체육인 등 다양하다.

평양축전도 예외는 아니었다. 물론 준비위의 결정에 따라 성격이 달
라지기도 하지만 평양축전은 어느 대회보다도 주체사상 보급을 비롯한
정치행사에 중점을 뒀다. 특히 평양 대회때는 전대협이 당시 외대불문
과 4학년에 재학중이던 임수경씨를 평양에 파견, 충격을 불러 일으켰었
다.

평양축전은 아시아권의 연대 강화, 남한내 미군철수와 청년학생들과
의 연대 강화 등도 중요 의제로 삼았다.

역대 준비위측은 가능한 한 정치색을 배제시키고 참가자들의 문을
넓혀 민주적으로 운영하겠다고 표방해 왔지만 평양 대회까지는 WFDY,
IUS가 사실상 구소련 공산당 국제국의 지휘 아래 있었기 때문에 서방측참가자들의 요구를 수용하지 못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