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보-외교업무 절충 성패는 결국 대통령과 안보보좌관 몫 ##.
72년 12월 막 재선에 성공한 닉슨 대통령은 외교·안보 진용을 대폭
갈아치울 생각이었다. 1기 닉슨 행정부 때 대통령보다도 더 높은 인기
를 구축한 헨리 키신저 백악관 안보 보좌관과 오랜 친구 사이이긴 하지
만 직무 수행에서 큰 족적을 남기지 못한 윌리엄 로저스 국무장관 등을
모두 경질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닉슨의 개각 구상은 실현되지 못했다. 대통령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 로저스를 먼저 찾아간 백악관 비서실장 핼더만이 '사임'
을 종용하기 무섭게 로저스가 강력히 반발했던 것이다. 로저스는 "만약
내가 지금 물러난다면 사람들이 모두 키신저와의 싸움에서 졌기 때문이
라고 생각할 것"이라며 대통령의 '용퇴' 요구를 거절했던 것이다. 하지
만 키신저와 로저스간 싸움은 이로부터 아홉달 후인 93년 9월 키신저가
아예 로저스의 자리인 국무장관에 임명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로저
스의 완패였다.
● 외교 안보 전략 놓고 국무장관과 대립도.
이처럼 미국에서 미 국무장관(Secretary of the State Department)
과 백악관 안보보좌관(National Security Adviser) 사이는 종종 물과
기름과 같은 관계로 발전하곤 한다. 이 관계는 우리의 외무장관과 청와
대 외교안보수석을 연상하면 쉽게 이해된다. 미국의 외교·안보 전략
수립과 집행 등의 공을 놓고 대통령의 신임을 경쟁하는 그런 숙명적 대
립관계가 두 기관 사이에는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올해로 50년 역사를 가진 미 국가안보회의(NSC·National
Security Council) 조직의 출범 취지는 이와는 정반대였다. 외교(국무
부)와 군사(국방부와 합참), 정보(중앙정보국·CIA) 등의 업무를 조정
하고 의견을 종합, 미국의 외교·안보 정책에 조화와 일관성을 기한다
는 것이 NSC 출범 이유였던 것이다. 47년 미 국가안전법에 따라서 설치
된 NSC는 대통령이 의장이 되고, 부통령과 국무장관, 국방장관이 참석
하며, CIA 국장과 합참의 장이옵서버로 참석하는 명실상부한 미 외교·
안보분야의 최고 협의체라고 할수 있다. 클린턴 행정부 들어서는 경제
안보 개념에 따라 재무장관이 다자 외교 강화 원칙에 따라 유엔 대사등
이 정규 멤버로 참석하고 있다. 굳이 따진다면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비
롯한 직원들은 이 NSC라는 조직에 배속된 상설 직원들인 셈이다.
2차 대전 직후인 47년 미 의회가 NSC 출범 등을 담은 미 국가안전법
을 만들 때는 부처간 업무 조정과 협력이라는 문제가 정말 심각한 사안
으로 대두한 상태였다. 특히 각 부처에 흩어져 있던 미 정보 기관들이
일본의 진주만공격을 감지하고도, 이를 보고·정책화하는 데 실패한 이
유도 부처간 협력 실패에서 찾아질 정도였다. 당시 이 법에 따라 NSC가
만들어졌고, 중앙정보국(CIA)이 지금의 골격을 갖출 수 있었던 것도 이
런 분위기 때문이었다.
또 미 의회는 NSC라는 제도적 장치가 있으면 외교·안보 분야에서
대통령의 자의적인 권력 사용을 견제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은 모두 한낱 기대로만 끝나버렸다. NSC라는 대
통령까지 참석하는 회의보다는 이 회의 운영 등을 돕는 한편 대통령 자
문역을 맡도록 돼 있었던 백악관 안보보좌관 등 비서들의 힘이 커지게
되는 생각지 못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
● 비밀외교 즐긴 닉슨과 키신저 합작으로 커져.
NSC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닉슨 행정부(69∼74년)를 거치
면서다. 50명 안팎에 불과하던 직원이 3배 가까이 늘었고, 대통령의 외
교상담역 정도에 그치던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비밀 협상 등 실제 외교·
안보 정책의 집행 과정에까지 직접 참여하는 집행 기능까지 갖추게 된
것이다. 이는 비밀 외교를 즐긴 닉슨이라는 대통령의 성향에 키신저라
고 하는 불세출의 재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키신저는 한때 NSC 보좌
관 수를 3백명 가까운 인원으로까지 늘렸을 정도로 NSC를 사실상 외교·
안보 정책의 '옥상옥'으로 끌어올렸다.
또 다른 NSC의 전성 시대는 카터 행정부 때였다. 즈비그뉴 브레진스
키라는 개성 강한 백악관 보좌관이 끝내 사이러스 밴스 국무장관을 사
퇴시키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하지만 70년대의 NSC 전성기는 미 국민들
에게 NSC는 정부 부처들 위에 군림하면서 비밀 공작이나 하는 곳이라는
좋지 않은 인상을 남기는 역효과를 가져온 시절이기도 했다. 80년대 레
이건 행정부 시절에 발생한 '이란·콘트라 스캔들'까지 터지면서 NSC는
상당한 시련을 겪는다.
그러나 NSC에 대한 미국내 분위기는 상당히 역설적이다. NSC가 강하
면 "너무 설친다"며 반발하지만, 반대로 약할 경우에는 "외교·안보 분
야의 업무 조정 기능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한다. 결국 NSC에 부여된
고유기능인 '외교 안보 분야의 조정판' 같은 역할만큼은 누구도 부인하
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결국 NSC가 과연 미 외교 안보 정책에 순기능을 하고 대통령 직무
수행을 돕느냐 여부는 대통령 본인과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성격에 크게
좌우된다는 것이 반세기에 걸친 운영 과정에서 드러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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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상황실'
대통령 가는 곳이면 어디든 24시간 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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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통령 집무실인 백악관 서관(서관·West Wing)의 오벌 오피스 지
하에 바깥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황실'이라는 곳이 있다. 직원 25
명이 상주하는 이 상황실이야말로 세계 초강국 미국을 움직이는 신경 중
추라고 할 수 있다. 이 상황실은 전세계 곳곳의 실제 상황을 감시하는
미국 대통령의 눈과 귀이자, 미국 대통령의 생각과 뜻이 세계로 전파되
는 첫 장소이기도 하다.
1년 열두달 중 하루도 거르지 않고 24시간 운영되는 이 상황실은 통
신분야 최고 전문가인 현역 군인들이 근무한다. 미 국방부와 국무부, 중
앙정보국(CIA) 외 모든 군사·첩보 기관들이 이 상황실과 비상 라인을
열어놓고 있다. 상황실에 접수되는 보고만도 하루 수천건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상황실은 대통령 집무실 지하에만 위치해 있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이 움직이는 곳이라면 어디든 이동 상황실이 설치된다. 하루 24시
간내내대통령을 따라다닌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미 대통령 전용기인 '에
어포스원'(Air Force One)에는 언제든지 미 대통령이 공격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비밀 통신 라인이 준비돼 있고, 평화롭게 산책을 할 때 조차 휴
대용비밀통신 장비를 든 직원 1명이 늘 따라다니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흔히 워카(WHCA·The White House Communication Agency)라고 하는 조직
에 배속된 직원이 든 작은 가방 속에는 언제든 선전 포고를 하고 주요
무기 사용을 승인할 수 있는 암호 코드를 갖춘 통신 장비가 담겨 있는
것이다.
바깥에 알려진 전쟁 상황실(War Room)은 보통 미 국방부 청사인 펜타
곤내에 있다. 미·소간 오해에 따른 핵 전쟁을 막기 위해 마련된 이른바
'핫 라인'(Hot Line) 전화선도 이 워룸에 있다. 걸프전 당시 얼핏 일반
에 선보인 이 워룸은 각종 할리우드 영화에서 자주 재현되 듯이 갖가지
종류의 상황판과 대형 스크린, 컴퓨터 모니터 등등 사실상 미군을 움직
이는 두뇌와 같은 존재다.
꼭 전쟁이 아니더라도 미국에서는 워룸 운영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곤
한다. 어떤 상황을 풀어갈 때 마치 군사 작전에서 사용되는 '즉각 보고·
신속대응'이라는 방식이 필요한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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