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만이 살길이다'.

귀에 익은 말이다. 그래서 '그 물건 이렇게 만들면 된다'며 기술을 공
개한 마쓰시타의 14일 결정은 우리에게 이상하다. 마쓰시타가 "애용해
주세요"라고 선심 쓴 기술은 냉장고 에어컨 등 가전제품의 핵심 '수지재
료'에 관한 기밀. 제품 성능을 크게 좌우하는 주요 원재료이며, 고도의
기업기밀이다. 마쓰시타는 "자원재활용이라는 환경차원에서 결정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은 '마쓰시타 방식'의 보편화를 통한 시장수요 확대
에 목적이 있다. 흔한 표현으로 '세계표준화' 문제다.

세계경제를 좌우하는 미국 일본 유럽기업에 기술개발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먹고살지 못한다. 세계가 외면하는 첨단기술
은 '뛰어나긴 하지만, 돈벌이는 안되는 이론'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과거 VTR 기술을 놓고 소니와 마쓰시타가 주역이 되고, 히다치 필립스
등이 가세한 'VHS-베타' 전쟁이 있었다. 보다 작은 비디오테이프를 사용
하는 베타방식이 '기술의 소니'가 개발한 것이었고 성능도 뛰어나다는
평가가 있었다. 그러나 VTR이란 하드웨어에 대해, 소프트웨어와 소비자
시장을 잡고있던 미국과 유럽은 VHS 손을 들어줬다. 기술의 소니는, 기
술이 아닌 '시장'에 패배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벌어진 것이 콜럼비아영
화사, MCA 등 일본기업의 미국매수 경쟁. 하드는 물론 소프트웨어까지
장악해 세계표준화를 스스로 만들어버리자는 전략이었다. 이제 그 경쟁
은 비디오테이프를 CD화한 'DVD'분야에서 벌어지고 있다.

세계첨단기술이 있다고 만사가 해결되지 않는 것이 지금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그 기술만이라도 있어야 산다'는 상황이다. '가격만이
살길'이란 개발도상국에 밀리고 있기도 하다. 얼마전 한국 유수기업의
일본내 책임자는 '우리는 요렇게 살고있다'고 말해줬다.

"일본시장 점유율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야 발언권을 확보할 수 있
습니다. 기술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덤핑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가 미국 일본과 싸운다는 것, 그것은 꿈입니다.".

1945년 광복을 맞은 한국에서, 50여년간 벌어진 것이 국산품 애용운동
이었다. 정부는 값 비싸고 질 떨어지는 우리제품을 사라고 강요했다. 국
민이 자의반 타의반 동의한 것은 '우리가 희생하면 우리기업이 언젠가는
세계최고의 물건을 만들어낼 것'이란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우리
의 꿈에 대해 우리기업들은 "그건 진짜로 꿈이었다"며 눈물나는 '현실'
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동경=이혁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