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바트화 위기가 동남아 각국으로 확산중이다. 지난 5월 태국
금융시장을 강타한 외환 위기는 14일에도 태국 바트화, 말레이시아 링
깃화,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등의 동반 폭락을 야기, 지난 94년 멕시코
페소화 위기가 동남아에서 재현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각국
의 수출 부진과 재정 적자속에 불거진 이번 사태는 특히 현지의 부동
산 가격 폭락과 맞물려 지난 10년간의 초고속 성장이 만든 거품을 본
격적으로 걷어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태국 정부가 지난 2일 관리 변동 환율제를 선언한 이후 바트화는
기존 환율보다 10% 이상 낮은 미화 1달러당 30.55바트 선으로 하락했
다. 이에 따른 도미노 현상으로 필리핀 페소화도 14일 마닐라 외환시
장에서 지난 주말보다 5.4% 떨어진 1달러당 27.79 페소로 하락했고,
말레이시아 링깃화도 지난 주말 1달러당 2.50 링깃에서 2.55링깃으로
동반 폭락했다. 심지어 인도네시아의 루피아화도 1달러당 2천4백38루
피아에서 2천4백70으로 하락세로 타고 있다.
이같은 동남아 각국 통화의 연쇄 폭락은 국제 금융계의 큰손인 조
지 소로스 등 외환 투기꾼들의 현지 통화 투매가 직접 배경이다. 이들
은 지난 5월 초 수출 침체와 부동산 하락으로 고전중인 태국의 바트화
투매에 나섰다.
이에 따라 태국 정부는 5월 한달간 40억달러의 자금 방출과 16개
부실 종합금융사에 대한 통폐합 지시로 환율 안정을 기했으나, 당초
기대했던 수출 활성화가 지연돼 환율이 안정세를 타지 못하고 있다.
태국은 조만간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2백억달러의 환율 안정기금
을 대출받는 한편, 금주중 일본을 방문하는 재무장관을 통해 일본 민
간 금융기관의 환율 관련 대출 여부를 타진할 예정이다.
태국 바트화의 불안은 이달 들어 인근 필리핀으로 옮겨갔다. 이에
따라 필리핀 중앙은행은 지난 10일 단기 정책금리를 30%에서 32%로 인
상, 외환 투기꾼들의 페소화 투매를 일단 진정시켰다. 대신 금리 상승
에 따른 기업의 여신부담 증가가 주식 투매를 초래하자 중앙은행은 페
소화거래 환율폭을 확대하는 사실상의 평가절하 조치로 페소화 환율을
안정시켜야 했다. 한 말레이시아 중앙은행도 지난 8일 링깃화에 대한
외부의 투기 움직임과 관련, 하룻동안 10억달러의 환율 안정기금을 방
출하는 등 시장개입을 계속중이며, 가장 최근에는 인도네시아도 루피
아화 안정에 부심하고 있다.
동남아의 통화위기는 역내 경제가 초고속 성장기에서 조정기로 접
어들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대부분 미국 달러화에 연동시켜온 이들 통
화의 환율은 지난 10년간 고속성장기중 안정세를 보였으나, 최근 수출
부진에 따른 재정적자 증가와 악성 채무를 걸머진 현지 금융업계의 부
실 등으로 악화되고 있다.
그러나 일부 금융 전문가들은 이번 통화위기가 10∼15년의 경기순
환 주기에 따라 찾아오는 현상일 뿐이라고 보고 있다. 지속적인 성장
률이나 외채규모면에서 동남아와 지난 94년의 멕시코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김성용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