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석에 앉은 이수성 고문은 양손을 단전 부근에 모은 채 움직임이
거의 없는 모습이었다. 이인제 지사의 연설이 진행되는 동안은 눈을
감고있었다.

자신의 가계에 대한 비방 문건이 전날 의원회관에 우송된 때문인 듯
했다.

이 고문이 부친을 가장 존경한다고 말해온 것은 잘 알려진 일. 그런
데 이사건이 연설회가 있던 당일 이회창 고문쪽에서 저지른 것이냐 외
부 소행이냐를 둘러싼 논란으로 비화된 상태였다.

마지막 순번으로 연단에 오른 그는 "연설을 잘하려면 음의 고저 장
단을 활용해야 하고 소리도 높여야 한다고 해서 몇 번 연습했는데 잘
안됐다"며 "평소대로 하겠다"고 서두를 꺼냈다. 대의원석에선 이날 마
지막 웃음이 퍼졌다. 그는 대학총장 인사말을 연상시키는 어조로 말을
이어 나갔다. 박수를 유도하지 않았고, 대의원들의 함성 호응이 있을
때만 잠깐 말을 멈췄다.

그는 이어 문건 사건에 대한 심경을 밝히는 것으로 본론을 시작했다.

그는 비방 대상이 된 부친과 백부가 어떻게 살았는지 간단히 언급한뒤
"이런 정치 풍토에서 정말 떠나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한동안 장
내에 긴장감이 감돌기도 했으나, 그는 "그러나 당내 소행이라고는 믿
고 싶지않다"는 말로 분위기를 바꿨다.

그는 또 "세계는 눈부신 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나 우리는 시동이 꺼
져가는 차 안에서 서로 핸들을 잡겠다고 다투면서 갈등과 반목으로 한
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하는 형국"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교수 출신답게
수직적 교육제도에 일대 수술을 가하겠다고 했다.

그가 가장 강조한 대목은 집권할 경우, 자신의 리더십이 어떠할 것
인가에 대한 대목이었다. "국민 위에 군림하지 않고 이익을 좇아 말을
바꾸지 않는 대통령" "본인을 모략한 사람조차 포용하는 대통령" "사
랑의 정치로 지역주의라는 말조차 없애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또
"어떤 정당, 어떤 후보하고 싸워도 확실히 승리할 수 있는 후보를 뽑
아야 한다"며 '본선 승리 후보론'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날 그의 연설에 대한 타후보 진영의 평가는 의외로 호소력이 있었
다는 것이었다. 유일하게 웅변형이 아니었던 게 솔직하다는 인상을 줘
오히려 차별화 효과를 거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연설회가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닌 이상 계속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얘기
도 있었다.

그의 연설이 끝난 시간은 오후 4시45분. 이인제 후보의 연설이 시작
된 지 2시간 20분 만이었다. 그는 7인 후보가 손을 맞잡아올리고 대의
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한 뒤 바로 행사장을 떠났다. 그는 행사 전에는
로비에서 대의원들을 악수로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