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싱가포르 = 박선이기자 】 남미에 원주민과 유럽인의 혼혈,
메스티조가 있다면 동서양 충돌의 현장 싱가포르에는 페라낭칸이 있
다.
중국 서남해안 푸젠(복건·혹켄)출신 중국 남자들은 16세기부터
말레이반도로 흘러들어와, 말레이 여성과 새로운 가계를 만들어냈다.
겉모습은 말레이계이지만 생각이나 관습은 중국인 그대로다. 남성은
바바, 여성은 노냐라했고, 노냐가 만든 음식 역시 노냐라 부른다.
야자나무 우거진 짙푸른 열대숲의 도시 싱가포르. 1년내내 여름
이 계속되는 이곳 대표적 음식이 페라낭칸 요리다. 중국계 말레이계
인도계가 한 '국민'이 돼 다양한 문화충돌과 융합을 거듭하는 이곳에
서 음식 역시 예외가 아니다. 1층은 가게, 2∼3층은 살림집인 루마
키아 케이(숍하우스)가 대표적인 페라낭칸 건축 양식이다. 바람이 잘
통하는 1층 가운데 부엌과 식당이있어 집 전체에 향신료 냄새가 배있
다.
"말레이 음식의 다양한 향신료를 그 못잖게 다양한 중국음식에 적
용한 것이 노냐입니다. 땀 흘리고 지치기 쉬운 열대지방에 적응할 수
있게 독특한 향료가 입맛을 돋우는 멋진 음식이지요.".
인터콘티넨탈 싱가포르 호텔 데스먼드 찬 주방장 설명이다.
새큼하며 신선한 향을 내는 레먼그라스, 생강보다 조금 더 톡쏘는
블루 진저, 역시 톡 쏘는 가벼운 맛의 양파 샬롯같은 향신 채소가 말
레이 음식에서 받은 영향이다. 판단 이파리와 새까만 야자 설탕, 코
코넛도 많이 쓴다. 커리 맛을 내는 터메릭과 통후추도 듬뿍 써서 맵
고 자극적인 풍미를 즐긴다.
새우젓을 말려 어묵처럼 만든 벨라칸 같은 것은 중국요리에서는
찾아보기 드문 재료다.
싱가포르에서 가장 이름난 페라낭칸 식당이 '블루 진저'(222)3928.
말레이음식의 대표적 재료에서 이름을 따왔다. 돼지고기 완자 맑은
국과 인도네시안 너트를 넣은 닭찜, 돼지어깨살 조림, 잡채, 대하찜
으로 이어지는 세트메뉴는 모양만 보면 광동요리와 비슷하지만 맛은
상당히 다르다. 광동요리보다 맑고 가볍고 향이 강한 게 가장 큰 차
이다. 붉은 고추와 풋고추 채썬 것, 고춧가루를 곁들여 내 매운
맛을 즐기는 사람에게 잘 맞는다. 한접시씩 주문할 수도 있다. 닭고
기, 돼지고기는 8∼10싱가포르달러(5천1백20∼6천4백원가량) 쇠고기
12달러(7천7백원) 해산물 14달러(9천원)로 비교적 싸다.
싱가포르 음식축제에서 매주 수요일 아침 8시30분부터 오후4시까
지 진행되는 '페라낭칸투어'는 재래시장 방문, 페라낭칸박물관 견학,
페라낭칸 점심, 페라낭칸 요리실습으로 꾸며 싱가포르 역사의 한 단
면을 체험할 수 있다. 식사와 요리강습 포함해 1백20싱가포르달러(7
만7천원가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