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산 나눠준후 "내겐 희망이 남아있소" ##.
그리스 본토 도시국가의 왕들이 페르시아 원정을 앞둔 군사회의에 마
케도니아 왕 알렉산드로스를 초청한 것은 기원전 336년의 일이다. 욱일
승천하던 마케도니아의 군사력에 힘입어 알렉산드로스는 이 회의에서 총
사령관에 선출되었다. 알렉산드로스가 왕위를 계승한 해의 일이니 그의
나이는 여전히 약관이었다.
내로라하는 정치가, 장군, 철학자들이 코린토스로 몰려와 축하인사를
했다. 그러나 총사령관이 기다리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는
당시 시노페 출신의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코린토스에 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디오게네스가 축하 인사하러 와줄 것을 은근히 기대
했다. 디오게네스를 페르시아 원정군의 군사로 맞아들이고 싶었던 것일
까? 그러나 디오게네스는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알렉산드로스는
몸소 이 철학자를 찾아가 보기로 하고 있는 곳을 수소문해 보았다. 디오
게네스가 크라네이온(운동경기장)에서 햇살 아래 누워 게으름을 즐기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디오게네스가 지금의 토관과 그 모양이 비슷한 나무통 속에 들어앉아
이것을 굴리고 다녔다는 전설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당시 코린토스에는 큰 나무가 귀했다는 사실을 그 이
유로 내세운다. 비렁뱅이나 다름 없던 견유철학자가 그렇게 큰통나무를
굴리고 다닐 수는 없었으리라는 것이다. 플루타크는 통의 모양은 전혀
묘사하고 있지 않다. 일본의 고전학자 고우노는 디오게네스가 도기 항아
리를 굴리고 다녔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여튼, 햇살 아래 누워 있던 디오게네스는 총사령관에 묻어오는 무
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총사령관을 알아보고는 일어나 앉았다.
알렉산드로스가 정중하게 인사하고는 물었다.
"도와드릴 일이 없겠습니까?" 디오게네스는, "있지요" 하고는 이렇
게 대답한 것으로 전해진다.
"햇살을 가리고 있으니까 조금만 비켜 서 주시오(Micron apo tou
heliou metastethi).".
알렉산드로스는 그리스 원정군 총사령관을 본 체도 하지 않는 철학
자의 배포에 질려 다음 질문을 내놓지 못했다. 함께 왔던 사람들이 철인
의 퉁명스러움을 비웃었지만 알렉산드로스는 그 자리에서 돌아서면서 중
얼거렸다.
"내가 만일 알렉산드로스가 아니었다면 디오게네스가 되고 싶다(If I
were not Alexander, I would choose to be Diogenes).".
디오게네스는 조의조식, 즉 거칠게 먹고 험하게 입고 산 사람으로 유
명하다. 형편이 구차스러워 고기를 사먹을 수 없었던 그는 값싼 푸성귀
를 구해 깨끗이 씻어 먹고는 했다. 그가 시냇가에서 푸성귀 씻고 있는
것을 본 한 유복한 친구가 지나가다가 안타깝다는 듯이 그에게 충고했다.
"고개 수그리는 법을 조금만 알아도 호의호식할 수 있는 것을….".
유복한 친구를 돌아다 보면서 디오게네스가 응수했다.
"조의조식하는 법을 조금만 알아도 고개를 수그리지 않아도 되는 것
을….".
페르시아 원정을 앞두고 알렉산드로스는 델포이로 올라갔다. 델포이
는 예언의 신 아폴론의 신전이 있는 곳이다. 알렉산드로스는 아폴론 신
이 그 신전에 맡겨놓은 뜻을 받아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가 신전에 이른
날은 공교롭게도 액일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부하를 신전에 들여 보내
제니에게 총사령관이 탁선, 곧 신이 맡겨놓은 뜻을 받으러 왔다는 사실
을 알리게 했다. 잠시 후 부하가 나와 이런 말을 했다.
"퓌티아는 신전의 율법에 따라 액일에는 신이 맡겨 놓은 뜻을 전해줄
수 없노라고 합니다.".
예언의 신 아폴론이 예언하는 능력을 얻은 것은 그가 맨손으로 때려
잡은 왕뱀 퓌톤을 통해서다. 그래서 신전의 제니는 전통적으로 '퓌톤'의
여성형 명사인 '퓌티아'라고 불린다.
알렉산드로스는 부하를 다시 들여 보내 우격다짐으로 퓌티아를 끌어
내게 했다. 끌려나온 퓌티아는 사령관 앞에서도 탁선을 전할 수 없다고
버티었다.
알렉산드로스는 퓌티아를 끌고 신전으로 들어가 트리포우스(Tripous)
에 앉혔다. 트리포우스는 삼각대(Tripod), 즉 다리가 세 개인 걸상인데,
델포이의 제니가 신의 뜻을 전할 때는 반드시 이 삼각대에 앉아서 전하
기로 되어 있다.
제니는 알렉산드로스의 열성에 감복했다는 듯이 이렇게 중얼거렸다.
"참으로 질 줄 모르는 사람이군요(Thou art invincible).".
탁선을 받은 것이 아니라 만들어낸 셈이 된 알렉산드로스가 응수했다.
"그것이 바로 내가 받고 싶어하던 신의 뜻이오.".
알렉산드로스의 원정군은, 역사가에 따라 주장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
지만 대략 3만5천명의 보병과, 보병의 1할쯤 되는 기병으로 이루어져 있
었던 것 같다. 알렉산드로스는 변변치 못한 군자금으로 원정에 나서면서
도 왕실 재산을 군자금에 보탤 생각은 하지 않고 참모의 가족들에게 고
루 나누어 주고는 손을 털었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귀족 출신의 참모
페르디카스가 알렉산드로스에게 물었다.
"아니, 전하께서는 빈털터리가 되시지 않았습니까?".
알렉산드로스가 대답했다.
"천만에, 아직도 내게는 희망이 있소."
"그렇다면 저도 재산대신에 그 희망이라는 것을 좀 나눠받겠습니다.".
페르디카스는 왕이 하사한 재산을 반납했다. 그러나 왕은, 더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그것마저 나누어주고는 다시 손을 털었다. 후일 페르
디카스는 알렉산드로스 사후 대제국의 섭정이 되니, 그가 나누어받은 희
망의 열매가 어찌 어리석은 것들이 받은 한 상자의 돈과 같다고 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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