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5장 형제 ⑥ ##.

(이 아이는 떠남과 돌아옴 모두에서 아홉살이나 손위 형인 나와 한 번
도 의논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떠나 있는 동안에도 막연한 안부 편지뿐,
가족과는 사실상 단절하고 지냈다. 반가움 하나만으로 이 아이가 지난
삼년간 게을리한 가족으로서의 의무를 용서해도 되는가. 형의 권위를 무
시한 크고 작은 결정들을 이대로 추인해야 하는가.).

명훈의 그런 자문이 아니었더라면 그날 형제의 만남은 자칫 통속극의
한 장면처럼 눈물로 얼룩졌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나기 직전에 상기
해낸 형의 권위가 명훈을 진정시켜 그 대면은 자못 의젓하고 조리있는
것이 되었다.

"아, 형님.".

명훈이 하숙방 문을 열자 인철이 상기된 얼굴로 일어나며 소리쳤다.
금방 달려와 안기려다가 감정을 억누른 명훈의 표정을 보고 멈칫하는 눈
치였다.

"너였구나.".

명훈은 짐짓 냉담한 어조로 아는 체를 하고 인철이 알아보기 전에 안
주 접시를 뒤집어 써 더렵혀진 옷부터 갈아입었다. 그리고 아랫목에 자
리를 잡은 뒤 천천히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면서 그때까지 엉거주춤 서
있는 인철에게 여전히 냉담한 어조로 말했다.

"거기 앉거라.".

무언가 속으로는 벅찬 감회가 있는 듯했으나 명훈의 그런 어조가 다시
서먹하게 만들었는지 인철이 말없이 맞은 편에 앉았다.

"어머님 뵙고 오는 길이냐?"
"저어… 집 주소를 몰라서. 돌내골로 바로 갔다가 거기서 겨우 집 주
소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우선… 형님부터 뵙고 집으로 가려구요.".

명훈의 물음을 듣고서야 형이 추궁하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린
인철이 그렇게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하긴 네게 무슨 집이 있고 부모형제가 있겠어? 편지에 발신인 주소를
쓰지 않은 것은 부모형제라도 잘 돌봐 주지 못할 처지면 네 하는 짓이나
가만히 보고 있으란 뜻이겠지. 내가 여기 있다는 얘기는 누구에게 들었
어?"
"안광에서 형님을 보았다는 사람이 있어서요. 그냥 다녀가신 게 아니
라 머물고 계신 것 같다고 했습니다. 상두형은 일간 형님을 찾아 나설
모양이던데요.".

"뭐? 상두까지? 그래, 내가 뭘 하고 있는 줄 알데?"
"전에 장사하시던 거 재미 못봤다는 것까지는 알고들 있더군요. 상두
형만 형님이 어디 끝발 좋은 기관에 취직한 거라고 떠벌렸습니다. 운전
수 딸린 검은 지프차를 타고 다니는 걸 본 사람이 있다나요.".

그 말을 듣자 명훈은 가슴이 철렁했다. 명양쪽은 피한다고 피했는데도
꽤나 정확하게 소문이 들어간 듯했다.

"하숙집은 어떻게 찾았어?"
"전에 형님께 들은 적이 있는 그 신문사 지국을 찾아… 여론 조사소로
간판이 바뀌어 실망했는데 낯익은 분이 있더군요. 박영복씨라고.".

`얘가 언제 날치를 본 적이 있지' 명훈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국토개발단 시절의 날치가 개간지에 한두 번 찾아온 적이 있음을 떠올렸
다. 하지만 그 일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건 그렇고-- 너는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지금까지 주욱 그 한의
원에 있었던 거야?".

명훈은 더 미루지 못하고 처음부터 궁금하던 일을 물으며 비로소 인철
을 뜯어보았다. 삼년 전 집을 나갈 때의 앳된 소년의 얼굴은 아니었다.

열여덟그때는 조금 죽은 듯해 보이던 콧대가 시원스럽다는 느낌이 들 만
큼 우뚝해졌고 솜털을 완연히 벗은 턱에는 거뭇하게 수염이 자라고 있었
다.

"네.".

명훈의 물음에 인철은 짧게 대답했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피어나듯 밝
아지는 인철의 표정에서 명훈은 어떤 자랑같은 것을 느꼈다. 무언가 긴
이야기가 있는데, 들어서 나쁠 것 같지는 않아 우선 마음이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