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쿠르니코바(러시아)는 왼쪽 엉덩이를 슬슬 문질렀다. 아무래도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
같다. 틈만나면 왼쪽 다리를 쭉쭉 펴 본다. 고개를 갸웃한다. 근육부상이나 경련이 일어난
모양이다.
3일 영국 윔블던테니스대회가 벌어진 센터코트. 기대를 모은 이팔청춘 동갑내기(16세)의
대결은 싱겁게 끝났다. '알프스의 소녀' 마르티나 힝기스(스위스·세계1위)는 대회 여자단식
준결승에서 컨디션 난조에 빠진 '댕기머리 소녀' 쿠르니코바를 2대0(6 3,6 2)으로 손쉽게
물리치고 결승에 선착했다.
쿠르니코바는 전날 경쾌하게 코트를 누비며 올 프랑스 오픈 챔피언 이바 마욜리를 요리했다.
그 모습을 다시한번 기대한 팬들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아직 세계1위의 벽을 넘보기엔
역부족인 솜털투성이 소녀였다. 게다가 힝기스까지 무력한 경기를 펼쳐 센터코트의
관중들은 박수도 환호도 잊은 채 침묵했다.
1세트에서 두 사람은 사이좋게 자신의 서비스 게임을 내줘 3 3. 힝기스는 이후 3게임을
잇달아 따내 간단히 한 세트를 정리했다. 쿠르니코바는 2세트에서 3 0까지 뒤진 후 처음으로
자신의 서비스 게임을 지켜 3 1을 만들었지만 힝기스는 이후 한게임만을 허용하며 6 2로
세트를 마무리. 승패는 단 62분만에 갈렸다.
상대를 지나치게 의식한 쿠르니코바는 많은 범실로 자멸했다. 힝기스는 이번 대회까지
쿠르니코바와 4차례의 대결을 모두 2대0 승리로 이끌었다. 힝기스는 이로써 지난 1887년
샬럿 도드가 15세의 나이로 패권을 차지한 이래 110년만에 가장 어린나이로 윔블던
단식우승의 문턱에 도달한 선수가 됐다.
남자 8강전에서는 세드릭 피욜린이 영국의 희망 그렉 루세드스키를 3대1(6 4,4 6,6 4,6 3)로
잡고 준결승에 진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