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청소년 대표팀의 패장 박이천 감독이 지난 26일 대한축구협회
를 찾았다. 삭발 머리에 모자를 꾹 눌러 쓰고 사무실을 돌며 귀국인사
를 했다. "죄송합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짙은 자책감이 배어있는 어
조였고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박감독은 목청을 가다듬었다.
"모든 책임은 제게 있습니다. 하지만 이영기 코치는 너무 유능
한 사람입니다. 그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십시오. 부탁입니다.".
같은 날 축구협회 기술위원회는 올 8월19일부터 31일까지 이탈리아
에서 열릴 97 하계 유니버시아드 한국대표팀(감독 김호곤)명단을 확정했
다. 18명의 선수중에는 최성용 김영철 장대일 안정환 등 현 국가대표
상비군이 4명 포함됐다.
월드컵 예선경기 참관차 일본에 있는 차범근 감독과는 아무 상의없
이 내려진 결정이었다. 유니버시아드 기간은 국가대표팀이 9월17일 한-
일전과 10월 월드컵최종예선을 앞두고 막바지 전술훈련에 피치를 올릴 때
다. 한-일전과 월드컵 예선은 한국축구의 자존심과 사활이 걸린 중요한
승부처. 기술위의 상황판단 능력에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같은 날 축구협회가 발표한 효창구장 사용중단 조치,유소년들의 축
구 유학주선, 연령별 상비군제도 운영도 기술위 작품. 효창구장 인조잔
디는 당연히 철거돼야 한다는 것이 축구계 안팎의 일치된 의견이었으나
기술위의 결정은 너무 즉흥적이었다.
효창구장서 치러지는 14개 전국대회를 어떻게 분산개최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은 언급조차 없다. 지방 축구협회가 처한 현실이나 규모를
보면 한층 의문이 생긴다. 부산축구협회의 상근 직원은 사무장과 여직원
2명에 불과하다.
충북협회는 91년 천안서 전국대회를 유치했다가혼이 난 경험이 있
다. 엄연히 주최사가 있고, 실무는 협회서 처리했지만 임원진 체재비와
회식비 등으로 몇천만원 이상을 지출한 것. 구장 이용문제도 간단치
않다.
정작 논란을 불러 일으키는 대목은 발표사항 말미에 적힌 '기술위
원회의 역할 강화'. 기술위는 상비군 운영, 해외정보 수집과 선진기술도
입에 관한 사항을 총괄키로 하는 등 자신들의 위상을 슬그머니 격상시켰
다.
현재 한국축구는 몇마리 토끼를 동시에 쫓아야 할 형편이다.2002년
월드컵과 관련한 각종 현안들을 해결해야 하고, 침체일로의 국내축구 열
기를 되살려 놓아야 한다.
월드컵 개막식을 치를 서울 전용구장 확보문제만도 개최도시 선정
과 결부되면서 다음 수순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경기
장에 관중이 들게 하고, 선수와 지도자를 양성하는 것은 축구협회와 프로
연맹의 몫. 프로구단들도 다양한 팬서비스로, 야구와 인기를 겨룰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월드컵을 유치하고, 월드컵 본선에 몇번 나가는게 뭐가 중요하냐.
한국축구는 안으로 곪아 들어가고 있다. 박이천 감독을 탓하지 말라.청
소년팀 패배는 한국축구 전체의 패배였다.".
한 실업팀 감독의 울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