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문학비평가로 꼽히는 가라타니 고진(56)
긴기대 교수가 평론집 '일본근대문학의 기원' 한국어판 출간을 맞아 지
난 23일 서울을 방문했다. 가라타니교수는 평소 교분을 나눠 온 한국의
대표적 문학비평가인 김우창 고려대교수와 함께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 민음사에서 한일 문학의 근대성과 두 나라 지식인의 공동과제를
놓고 대담했다.
가라타니 교수는 일본문학의 근대성 연구로 이미 서구비평계에서 높
은 지명도를 누리고 있으며, 일본 비평계의 귀재로 불린다. 또한 그는
일본 사회의 천황제 등 전근대적 요소를 비판하는 지식인으로도 유명하
다. 박유하 세종대교수의 통역으로 진행된 한일 두 비평가의 대담중 주
요부분을 정리해서 소개한다. .
▲김우창=선생은 일본근대문학의 내면 탐구 성향이 근대적 시민사회
를 향한 정치 운동의 좌절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해 왔습니다. 한국에선
문학을 현실에대한 최후의 파수꾼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선
생은 문학이란 무엇이며, 문학에 대한 이론이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
하십니까.
▲가라타니=저는 80년대까지 문학비평가로 활동했고, 그 이후에는 문
학 이외의 여러 쟝르에 눈을 돌렸습니다. 저는 바로 그때부터 제가 진
짜로 문학을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문자로 쓰는 언어'가 문학이므로,
글쓰기 자체가 문학적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일본에선 문학
의 효용성을 의심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문학같은 것은 없다'는 실
정입니다. 20년 전만 해도 작가가 사회문제에 발언하면 힘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선생은 독일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한국의 근
대화 과정에서 유교와 민주주의의 관계를 설명하셨습니다. 일본에서도
한때 '근대를 초극하기 위한 관념'으로서의 주자학이 강조된 적이 있습
니다.
▲김=저는 유교가 어떻게 한국의 발전에 기여했는가를 살펴본 것입
니다. 데카르트에서 칸트로 이어지는 철학이 서양의 근대성 발전에 중
요했듯이, 한국에선 유교가 주체성의 정립에 큰 역할을 했고, 앞으로도
그 의미가 중요하리라고 봅니다.
▲가라타니=저도 선생의 의견에 공감합니다. 선생은 데카르트에 중
점을 두셨는데, 저는 일본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 시끄러울 때 모더니즘
으로 이동하면서 데카르트 철학의 주체성을 중시했습니다.
▲김=데카르트의 철학 안에는 '데카르트 비판'이 들어있습니다. 그
것은 '자기 비판적 이성'이면서 '이성의 한계' 속에 있는 것입니다. 또
한 이성이 옳으냐 그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성은 억압적이면서도
자기비판적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일본
작가들은 가령 시바 료타료처럼 옛날 이야기를 풀어서 쓰는 '이야기꾼'
역할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도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
니다.
▲가라타니=그것은 역사의 형태를 취한 '이야기'입니다. 가령 최근
일본 NHK-TV가 방영한 대하드라마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끝부분에 '조
선 출병'(임진왜란)은 도요토미의 뜻이 아니라 부하의 음모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과거 역사를 현재 한일관계에 맞게 재구성한 것입니다. 그렇
지 않으면 역사를 빌어서 샐러리맨을 위한 처세술을 제시하거나….
▲김=앞으로 전개될 세계 역사 속에서 아시아의 의미가 별도로 있을
까요. 제 느낌으로는 유럽의 경우 다양한 사회문화가 하나의 테두리 속
에서 존재하면서 유럽을 이끌어 왔습니다. 아시아의 경우 미국이나 유
럽과의 관계도 있지만, 동아시아 내부에서의 지역문화가 필요하지 않겠
습니까.
▲가라타니=세계사란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되돌아봐서 재구성한
것입니다. 근대 초기 '아시아는 하나'라는 주장이 일본에서 제기됐는데,
이는 서양의 지배에 대항해서 아시아의 동일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앞
으로도 경제적 요청에 따라 이같은 동일성은 제기될 것입니다만 일본은
그때 과거의 대동아공영권 논리의 문제점을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합니다.
▲김='중국의 과학기술사'를 쓴 조셉 니덤은 17세기까지 서양에 앞
섰던 중국 과학문명이 왜 그 이후에 낙후됐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습니
다. 그는 서양의 경우 여러 국가 공동체를 통해 다양한 사고가 발전했
지만, 중국은 너무 통일된 상태라 그렇지 못했다고 풀이했습니다. 서양
에 대항하는 아시아의 동일성도 좋지만, 대동아 공영권의 전철을 밟지
않기위해서는 아시아 국가들이 각자의 다양성 위에서 서로 협조하는 길
을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가라타니=일본이나 중국이 아시아 동일성의 중심이 되면 문제가
많을 것입니다. 유럽공동체에서 벨기에와 네덜란드같은 나라들이 중심
역할을 하듯, 한국이나 대만이 중심이 되는 아시아 공동체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국가 차원의 교류도 중요하지만 개인 차원의 교
류가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민중이란 국가에 흡수되기 쉬운 존재이므
로 지식인 차원의 연대감이 필요합니다.
▲김=오늘날의 상황에서 세계적으로 공통 과제를 찾기가 힘들지만,
더 많은 개인적,문화적 교섭을 통해 공통과제를 확인해야 할 시점이 아
닌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