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MBC TV '산' 촬영현장에서 일어난 홍리나 추락사고는 연
기자 안전문제에 대한 관심을 새삼 불러일으켰다. 홍리나는 이날 인수
봉에서 암벽등반 신을 찍다 20m 아래로 굴러 전치 6개월이 넘는 중상
을 입었다.
홍리나는 드라마 제작에 앞서 다른 출연자, 제작진과 함께 한달가
량 암벽등반 전문가로부터 교육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
정도 사전교육만으로 연기자들을 위험한 현장 실연에 투입하는 게 애
초에 무리가 아니었느냐는 지적이 일고있다. 방송사가 연기자 열정에
만 모든 것을 맡긴채 사전 사후 안전대책에 소홀해왔다는 문제점도 드
러냈다.
그런 불상사에도 불구하고 '산'은 근래 드물게 미덕을 두루 갖춘
드라마로 시청자들의 진지한 관심을 모으고있다. 우선 이 드라마엔 불
륜이나 복잡한 삼각관계가 없다. 대신 땀내 물씬한 젊음과 시원스런
만년설이 있다.
'산'은 전작 드라마에 가까운 기획과 엄청난 투자로 방송전부터 주
목받았다. 제작기간 2년, 해외로케 6개월, 직접제작비 27억원, 해발
5천m 고지촬영, 프랑스 전문가들을 동원한 특수촬영, 포터 1천여명 동
원….
여느 드라마들이 방영 1∼2주 전에야 촬영에 들어가고, 시청자 눈
치보며 늘리고 줄이기를 다반사로 하는 것에 비하자면 힘과 영상미가
뛰어날 수밖에 없다.
연기자들도 실감나는 등반 신으로 현장감을 더했다. 김상중은 히말
라야 랑탕(해발 5천3백m)에서 일시적 기억상실증에 걸렸다. 박세준은
네팔 남체(해발 3천4백m)에서 고소증에 시달렸다. 감우성은 몽블랑 촬
영때 안개때문에 1시간30분이나 정상에서 고립돼 얼어죽기 직전 구출
됐다.
여자 연기자로는 유일하게 외국 고산을 두루 오른 김현아는 암벽
에서 미끄러져 큰 사고를 당할뻔 했다. 김현아는 한숨 돌리자마자 화
장을 고치고 카메라 앞에 나서 일행을 놀라게 했다. 급기야 홍리나가
중상을 입는 불상사까지 빚어졌다. 제작을 총지휘하는 박복만CP는 "대
역을 마다 하고 위험한 장면들을 직접 열연한 출연진 열정이 아니었다
면 작품 자체가 불가능했다"며 "홍리나 사고는 유감스럽고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산'의 매력은 우직함에 있다. 우정과 형제애, 산을 향한 집념이
흡인력을 발휘한다. 혼탁하고 자극적 요소를 배제한 무공해 드라마다.
아기자기하진 않지만, 대자연 앞에서도 인간 의지는 살아남을 수 있다
는 감동을 준다.
진지한 시청자들이라면 "바로 이런 드라마를 TV에서 보고 싶었다"
고 반긴다. "다섯살배기 딸아이를 곁에 붙잡아놓고 함께 본다"거나
"일부러 집안에서 TV를 치웠다가 아는 집을 전전하며 본다"는 이도 있
다.
'산'은 20부까지 대본이 완결돼 있다. 제작진은 '정직한 드라마'라
는 지향점에 계속 힘을 실을 생각이다. 앞으로 히말라야 조난을 비롯
한 긴급상황, 더위를 식히는 히말라야 설경이 펼쳐지며 볼거리도 많아
진다. 평소 14%선을 맴돌던 시청률이 알프스 전경이 방송됐던 16일에
는 17.7%까지 올랐다.
정작 걸림돌은 방송사 안에 있다. 흥행이 보장되지 않는 드라마 만
들기가 위축될 지 모른다는 우려다. 하지만 많은 방송비평가들은 "시
청률 지상주의로만 따질 수 없는 값어치가 '산'속에 숨겨있다"고 격려
한다. 그리고 '산'은 제작측이 출연자 안전에도 물심양면으로 투자해
야 한다는 교훈을 덤으로 남겼다. < 윤정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