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백정 폴 포트(69)가 마침내 투항한 것으로 알려졌다. AFP 통신은 18일 밤
(한국시각) 긴급 전문으로 '킬링 필드'의 연출자이자 집행자였던 크메르 루즈
지도자 폴 포트가 이날 체포되었다고 크메르 루즈 라디오 방송을 인용 보도했다.
방송의 코멘트는 "이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다"는 것.
폴 포트의 투항으로 캄보디아의 '어두운 한 시대'는 마감된 것이나 다름없다.
70년대말 4년간 최소한 2백만명의 양민을 학살해 캄보디아를 공포의 땅으로
만들었던 폴포트가 '역사의 패배자'로 다시 역사앞에 선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75년 4월 17일 론놀 정권이 무너지고 폴 포트가 이끄는 크메르 루즈군이 프놈펜에
입성했을때, 론놀 정권의 부패에 염증을 느꼈던 시민들은 "이제 평화가 왔다"고
만세를 불렀다. 그러나 그 시점은 '폴 포트의 시대의 시작'이자 현대 인류문명의
수치중 하나로 불리는 '킬링 필드'의 시작이기도 했다. 그후 79년 1월까지
폴포트가 집권했던 4년간 캄보디아는 죽음의 땅으로 변했다. 기아와 고문
학살등으로 6백만명의 국민중 2백만명이 죽어야했다.
이 '죽음의 혁명가' 폴포트는 지난 28년 프놈펜 북부 콩퐁톰 지방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살로스 사르. 캄보디아 관습에 따라 어릴 적 6년간 불교
사원에서 생활한 그는 프놈펜 기술학교에서 1년간 목수일을 배운뒤 40년대
호치민(호지명)이 이끄는 반 프랑스 저항운동에 가담했다.
49년 파리에
유학을 갔지만 혁명사상에 몰입하면서 시험에 낙제, 장학금이 끊겼고 53년
프놈펜에 다시 돌아와야했다. 63년까지 약 10년간 프놈펜의 사립학교에서 역사와
지리를 가르치기도 했다. 훗날 타임지가 폴 포트에 관한 기사를 보도하면서 붙
여준 '교사에서 백정으로(From Teacher To Butcher)'란 유명한 표현은 여기서
나왔다.
79년 권좌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북서부 밀림지대로 들어가 내전을 지휘해온 그는
85년 베트남의 압력으로 사령관 자리는 내주었으나 사실상 크메르 루즈군(군)을
지휘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마지막 장면에 근 30년간 오른팔과도 같았던 손센(67)과 그의 일가족을 죽이고,
그의 그림자같았던 지식인 출신 심복 키우 삼판(66)을 인질로 잡고 도망갔던
폴포트의 투항은 '이들 3인극(극)'의 최후를 보는 것같다.
사회주의 이상향을 꿈꾸며 캄보디아를 '해골의 땅'으로 만들어버린 그들은
이데올로기조차 결코 부정할수 없는 '휴머니즘'을 이데올로기로 깔아뭉개다가
결국은 자신들까지 죽여버린 '20세기 스탈린 주의'의 마지막 실패자들로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