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장 돌아가는 길④ ##.
"고맙습니다. 베푸신 후의 잊지 않겠습니다.".
인철은 마치 틈을 타서 도망치는 사람의 변명처럼 그렇게 말하고 꾸
벅 절을 한 뒤 원장실을 나왔다.
원장이 준 봉투안에는 만원이 들어 있었다. 그동안 인철은 먹고 자는
것외에 월급 3천원을 받는 것도 좋은 대우라고 만족해왔다. 그걸로 책값
과 학원비를 대고도 2년동안에 따로 6천원을 모아 입시때까지의 밑천을
삼으려는 그에게 한꺼번에 주어진 만원은 엄청난 돈이 아닐 수 없었다.
거기다가 원장이 써준 화제도 적잖아 인철을 감격시켰다. 조제실로
내려간 인철이 장군에게 원장이 써준 화제를 넘기자 그새 풍월을 읊게된
장군이 부러운듯 말했다.
"우와-- 참말로 놀랠 놀자네. 이거는 보약이라도 특A급이라. 보자 녹
용만 해도 두 냥이나 드가네. 내 여기온지 하마 5년이 다 돼가지만 원장
님이 직원 보약 지어주는거는 또 첨 본다. 너 어디를 그리 좋게 봤이꼬?".
그러면서 전에 없이 정을 베풀어 지어주는 약이 스무 접이나 되었다.
이년이나 약재창고에서 일한 덕분에 한약재의 귀천 정도는 구별할 수
있게된 인철에게도 흔해빠진 보약같지는 않았다.
그로부터 한 이십년 뒤 인철은 다시 그 한의원을 찾았다가 큰 빌딩이
들어서서 터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옛건물들이 자취없이 사라져 버린걸
보고새삼 인생의 무상함을 느낀 적이 있다. 건물뿐만 아니라 그때 한 번
성한 일가를 이루었던 사람들도 뿔뿔이 흩어져간 뒤였다. 원장은 한번의
이혼과 한번의 상처로 도합 세번 결혼했는데 그때문에 복잡해진 가계가
그같이 급속한 쇠락의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원장이 일흔 여덟으로 세
상을 떠났을 떠 아직 마흔둘인 젊은 후처와 배다른 여러 자식들의 상속
분쟁은 한때 작은 그룹을 형성했을 정도로 여러개의 기업체를 거느렸던
그집안을 조각조각 나누고 사람들도 서로 간 곳을 알수 없게 흩어져 버
렸다는게 인철이 들은 쓸쓸한 후문이었다.
저녁을 먹은 뒤 인철은 특별히 작별의 의식을 치른다는 기분도 없이
거리를 어슬렁거렸다. 지난 3년 그곳에서 새로 알게된 사람들과는 대강
작별을 나눈 셈이었다. 낮에 헌책방을 찾은 데도 얼마간은 그런 의미가
있었고 밤 깊어 돌아올 창호와의 이별주는 그 마지막이 될 것이었다.
원래 부산에는 인철이 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들도 몇 있었다. 그중에
서도 인철에게 가장 위로와 격려가 된 것은 용기와 재걸이었다. 둘다 그
곳에서 첫째 둘째를 다투는 명문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국민학교 동창
으로, 용기와는 졸업 뒤에도 줄곧 편지를 주고 받아왔고 재걸이도 인철
이가 어릴적 친구로 특별히 꼽는 동아리 대여섯명에 들어있는 아이였다.
고생스러웠던 첫 일년 인철은 그 아이들과 거리에서 맞닥뜨릴까 겁냈
다. 아무런 희망없이 도회의 밑바닥을 헤매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이
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한의원에 자리를 잡고 공부를 다시 시작하
게되면서 스스로 찾아가 그들과 어울렸고 그들도 반갑게 인철을 맞아들
였다.
인철에게는 부모의 보호아래 순조롭게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그 아
이들이 부럽기 그지 없었다. 그 아이들에게는 인철의 고단한 삶이 오히
려 신선하고 모험적으로 비쳤을 것이다. 그리하여 인철은 그 아이들을
통해 명문고교의 진학지도를 간접적으로 전수받았고 그들은 이미 성년처
럼 살고 있는 인철을 통해 자신의 평온한 삶속에서는 맛볼수 없는 일탈
과 긴장을 맛보았다.
그러다가 이듬해 용기가 먼저 대학에 진학하고 그해 시험에 낙방해
재수를 하던 재걸이마저 그 여름 서울로 가버리자 인철은 다시 혼자 남
겨졌다. 하지만 그 기간 다져진 그들의 우정은 헤어진 뒤에도 끊임없는
격려와 입시정보의 제공이란 형태로 이어졌다. 재걸이 다시 용기가 있는
대학으로 진학한 뒤에도 그같은 우정은 계속되었다. 지금 인철이 자신의
실력에 대한 아무런 검증도 없이 진학은 당연히 그들이 먼저 가있는 대
학으로 작정하고 있는 것도 엄밀한 의미에서는 그런 그들이 주입한 강박
관념에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