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공조'를 내세우던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정도전 논쟁'을
벌였다.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가 6월5일 경주에서 열린 글로리아 선교회 초청
강연에서 자민련 상표나 마찬가지인 내각제 문제를 건드린 것이 발단이
었다.

김 총재는 "같은 지도자라도 역사에 순응할 때는 성공하고 역행할 때
는 실패한다" 며 TV 사극 '용의 눈물'의 정도전을 예로 들었다. "정도전
은 고려의 적폐를 청산하고 조선 건국의 중심 인물로 왕권과 신권의 분
리등 당시로서는 선진적인, 요즘으로 말하면 내각제 같은 이상적인 정치
제도를 주장했다. 그러나 건국 과정에서 피로하고 지쳐 국정 안정을 바
라는 민심을 외면한 채 요동 정벌을 주장하고, 이방원과 같은 지도자를
원하는 민중의 마음을 읽지 못해 실패했다.".

이를 전해들은 자민련이 발끈했다. 김 총재의 발언을 '정도전은 내각
제 같은 이상 정치를 주장하다 실패했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인 자민련은
"YS 대선 자금 규명 등 여권을 향해 총공세를 펴도 모자라는 판에 같은
야당에게 무슨 소리냐"며 분개했다.

김종필 총재의 최측근인 김용환 사무총장은 '용의 눈물'만 시작되면
당의 공식회의를 서둘러 마칠 정도로 열렬한 팬이었다. 그는 그동안
"'용의눈물'에서 창업 과정을 주의깊게 보고 있다"고 말해, '용의 눈물'
을 통해 연말 대선 게임을 '시뮬레이션'하고 있다는 인상을 풍겼다.


● 국민회의 "그렇게 예민할 줄 몰랐다"
자민련 심양섭 부대변인은 안택수 대변인과 협의한 끝에 정색을 하고
장문의 반박 논평을 냈다. "이방원과 정도전의 대결은 왕권과 신권 대결
이 아니고, 따라서 대통령제와 내각제의 대결이 아니다. 그것은 조선 개
국의 터전을 닦은 개혁 정치인과 탐욕적인 왕자의 대결이었다. 정도전이
세자를 끼고 돌며 왕자들을 죽이려 했다는 '정도전 음모설'도 사실과 다
르다. 이방원은 백성들에게는 물론 조정내에서도 인기가 없었다. 이방원
의 반란은 이방원이라는 한 음모 정치자가 고려 구신들과 결탁해 세력을
키운뒤 수십명의 사병을 모아 정도전을 죽이고, 그의 쿠데타를 합리화하
기 위해 '정도전 음모설'을 유포하였던 마치 12·12 사태를 연상시키는
궁정 쿠데타였다. 조선 개국 초 개혁 정치인이었던 정도전의 패배를 내
각제 패배로 연결시키는 것은 전혀 사실과는 배치되는 것이다.".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란 말은 피했지만, 매몰차게 쏘아붙인 논평
이었다. 그러자 국민회의는 자민련 대변인실에 항의 전화를 걸어 "자민
련당 차원에서 그런 논평을 결정한 것이냐" "왜 사전에 상의 한마디 없
이 그런 논평을 냈냐"고 따졌다. 국민회의는 "김대중 총재의 발언은 내
각제를 비판한 것이 아니라 정도전의 무모한 요동 정벌 주장을 비판한
것이었다"고 설명한뒤 "더 이상 신경전을 벌이는 것은 서로에게 좋지 않
다"며 화해를 제의했다. 자민련도 이를 받아들여 더 이상 치고받기는 없
었다. 허겁지겁 불을 끈국민회의는 "자민련이 그렇게 민감하게 받아들일
줄 몰랐다"고 밝혔다.

한편 김대중 총재는 주간조선이 여야 대선 주자들을 상대로 실시한
"정도전과 이방원중 누구를 지지하느냐"는 앙케이트 조사에서 비전을 갖
고 있었고 선공후사를 실천한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정도전을 지지한다고
응답했으며, 김종필 총재는 각기 가치관이 다르다며 어중간한 태도를 보
인바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