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벤처 기업 대부…'인간'을 중시하는 경영자 ##.


1959년 4월 직원 28명, 자본금 3백만엔짜리 회사가 태어났다. 회사
이름은 '교토 세라믹주식회사'였다. 당시 직원들 부모 형제만이 회사
이름을 알았을 뿐이다.

1997년 이 회사는 직원 23만명, 매상고 5천여억엔의 거대 기업으로
탈바꿈해 있다. 회사 이름도 '교세라'로 바뀌었다. 현재 일본에서 이
회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교세라를 만든 사람은 이나모리 가즈오(65) 현 회장. 이나모리 회장
의 인생은 '실패한 벤처'의 전형이다. 중학교 두 번, 대학은 한 번 떨
어졌다. 젊었을 때는 결핵에도 걸렸다. 비일류 가고시마 대학을 나와
취직시험에도 번번히 낙방했다. 그러나 꿈은 잃지 않았다. 경제학자들
은 그의 철학을 '인간 중시' 경영이라고 분석한다. 현재 그에게는 일본
'벤처 기업의 대부' '경영의 신'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닌다. 씨 없는 수
박을 만든 우장춘 박사의 넷째 사위이기도 한 그는 일본 벤처 기업 우
상인 소프트뱅크 손정의 사장을 키워내기도 했다.

'경영의 실체는 사람,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경영자의 의지와 인격'
이라고 이나모리는 믿는다. 창업 2년째인, 그리고 노동 운동이 거세던
61년 사원들은 29세 사장 이나모리를 찾아와 협박했다. '평생을 보장한
다'는 글이 적힌 문서에 "도장 찍으라"는 것이었다. "보장 못한다. 그
러나 당신들은 내식구다. 불행하게 만들지는 않겠다. 나중에 속았다고
생각되면 나를 찔러라"고 버텼다. "젊었을 때 나 같은 놈한테 한 번 속
아봐도 괜찮치 않느냐"라고 덧붙였다.

83년 설명이 필요 없는 카메라 제조 업체 '야시카'를 인수할 때도
사람을 살폈다. 야시카측이 재무 구조표를 보여주려 해도 "나중에"라고
말했다. 그리곤 견학자로 가장해 공장 직원들과 대화했다. '직원들이
정열에 넘치는데 회사가 어렵다. 경영진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고 판
단했고, 대기업들이 거부하던 야시카를 인수했다.

인간을 중시하는 그의 경영 철학은 기업 조직 운영에도 그대로 나타
난다.

이른바 '아메바식 경영'이다. 그는 인원을 20명 단위 소그룹으로 나
누어 조직의 활력을 유지하고 있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강인한 정
신력과 일정한 틀이 없이 자유 자재로 움직이는 아메바 같은 소집단이
자율적으로 활동해야 기업의 생명력이 유지된다는 철학 때문이다.


● 반년간 절에서 수행 뒤 명예회장 복귀 예정
이나모리 주변엔 그를 돕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와콜사 스카모토 고
이치, 소니의 모리타 아키오, 우시오전기 우시오 지로, 세콤사 이이다
마코토 등 일본 최고 경영자들이 그를 돕는다. 지구 차원 위성통신사업
인일리듐 참여 여부 등 사업 상담을 해준 것도 이들이었다. 물론 이나
모리의 매력이 끌어들인 사람들이다.

그의 창업도 '7명의 동지'들이 도움을 준 결과였다. 그의 첫 직장인
'쇼후 공업' 동료 직원 7명이 27세의 그에게 인생을 건 것이다. 58년
이들은 냄새나는 기숙사 6평 단칸방에서 혈서를 쓰고 "설사 회사가 어
려워져도 신문 배달을 해서라도 이나모리를 돕자"고 결의했다. 현재 이
들중 1명은 교세라 사장으로 있고 나머지 동지들도 본사 및 계열사 회
장 사장 전무 감사를 역임했다. 어려운 시절 동지가 이나모리를 아꼈듯
이 성공한 이나모리 역시 동지들을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일본에서 사업을 시작했지만 그는 미국에서 성공 발판을 찾았다. 창
업 초기 대기업들은 교세라를 외면했다. 설움받던 이나모리는 '미국에
물건 팔면대기업도 관심 가질 것'이라고 판단했고 60년대 미국을 찾았
다. '신용장'이란 단어조차 몰랐지만 정성 쏟아 만든 제품으로 덤볐다.

그 결과 미국 TI사가 65년 아폴로 계획에 사용되는 부품을, 1년 뒤엔
IBM이 컴퓨터 부품 1억4천9백만엔 어치를 발주했다. 그러자 예상대로
일본대기업들도 교세라를 찾아왔다. 이러한 성공 스토리는 그의 영어
실력을 감안할 때 눈물겨운 것이다. 그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 은사 우
치노마사오 교수는 그의 졸업 논문 '점토의 물리적 성질'을 보고 감동
받았다. "차나 한 잔하자"고 이나모리를 불러냈고, "세라믹은 반드시
거대시장이 된다"고 열변 토하는 이나모리에게 "당신에겐 필로소피(철
학)가 있다"고 격찬했다. 우치오 교수는 철학 있는 경영인을 일찌감치
알아봤던 것이다. 그러나 이나모리는 집에서 영어 사전을 찾은 뒤에야
필로소피의 뜻을 알았다.

"기업 활동이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란
것이 이나모리의 소신이자 그의 벤처적·도전적 측면이다. 제2 전화사
업인 DDI설립이 대표적이다. 당시 전화 사업은 전전공사(현 NTT)가 독
점하고 있었다. 1백년간 전화 사업을 해왔고, 매상 4조엔, 종업원 30만
명인 거대 기업 NTT 앞에서 여타 대기업들은 몸을 사렸다. 그러나 이나
모리는 사원들을 모아놓고 연설했다. "여러분, 1백년에 한 번 찾아오는
기회입니다. 새로운 정보 통신시대를 개척하기 위해 뜻을 높아혀 사회
에 공헌합시다". 간부들에겐 "그간 번 돈이 1천5백억엔이다. NTT에 패
해 1천억엔쯤 손해 봐도 5백억엔은 남는다"고 설득했다. 불안 속에 출
발한DDI. 그러나 지난해 통신 시장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판매 액 5천
2백40억엔, 순이익 9백70억엔의 성공을 거뒀다.

그 이나모리가 다음달 절에 들어간다. "내 인생이 어떻했는지, 나란
존재는 무엇이었는지 좌선으로 깨닫고 싶다"는 것이다. 자신이 신도 회
장으로 있는 교토 엔부쿠지란 절로 들어간다. 오전 3시 기상해 하루 10
시간이상 좌선한다. 잠은 많아야 4시간. 6개월 뒤엔 경영 일선에서 손
을 뗀 명예회장으로 돌아온다. "수행으로 닦여진 눈을 통해 우리 회사
에 뭔가 조언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이나모리가 만든
교세라의 사시는 '완벽'이다. "최선을 다하는 것으론 부족하다. 완벽을
추구하지 않는 한 나태해진다. 목표도 이내 사라진다"고 말한다. 아침
세수할 때 "오늘은 또 어떻게 변신할까"를 생각하는 이나모리다.

-----------------------------------------
일 벤처 기업 원조 교세라
종업원 23만명 연매출액 5천여억엔
-----------------------------------------
일본 벤처 기업의 원조격인 교세라 그룹은 현재 종업원 23만명, 연
간 매출액 5천여억엔을 기록하는 거대 기업이다. 초창기 교세라는 창업
주 이나모리가 개발한 세라믹 재료를 제조 판매했다. 그러다 세라믹을
이용한 전자 부품, 전자 부품을 이용한 통신 기기로 사업 영역을 넓혀
나갔고, 84년 제2 전전(DDI)를 설립하며 장거리 전화 이동 통신 간이휴
대전화(PHS) 등 정보 통신 분야로 사업을 확대했다. 주력 생산품은 반
도체용 패키지, 전자 부품,휴대 전화, 프린터, 카메라 등이다. 모 기업
인 교세라 외에 계열사로 이동전화회사 8개사와 간이휴대전화회사 9개
사를 거느리고 있고 잘 알려진 카메라 브랜드인 '야시카 카메라'도 계
열사로 있다.

93년 일본이리듐회사를 설립, 저궤도 위성을 통해 세계 어디서나 전
화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이리듐 프로젝트를 미국 모토롤라 등과
합작으로 추진하고 있다. 또한 간이휴대통신 사업을 위해 DDI동경포켓
전화를 설립하고 저가로 휴대 전화를 공급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95년
에는 전화선으로 가정에 뉴스 가라오케 게임 등을 제공하는 멀티미디어
사업을 위해 교세라멀티미디어코포레이션을 설립했다.